여러모로 팍팍해진 기자의 삶
기본기 탄탄하게 다지기 목표

#1. 메신저 대화 도중 받침 쓰는 게 귀찮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었더니 대뜸 "기자가 이런 말 써도 돼요?"라고 물어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2. 화기애애한 술자리에서도 "여기 기자 분 있는데 그런 말 하면 안 돼. 내일 아침 신문에 나온다. 말 가려서 해라." 술자리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것 또한 기자다.

#3. "이거 우리 입장에선 민감한 사안이라 꼭 좀 이야기 잘 해줘. 되도록 기사 안 나가는 방향으로 꼭 좀 부탁해." 다음 날 신문에 기사가 나가면 나는 작은 부탁도 안 들어주는 쪼잔한 인간으로 찍힌다.

신문사에 몸담은 지 올해로 17년째다. 여러 부서를 거쳐 지금은 팔자에도 없는 데스크 역할까지 맡고 있다.

기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도 지역신문 기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는 신문에 기사가 나가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요즘은 기자보다 똑똑한 독자가 넘쳐난다. 기사 한 줄 한 줄에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고, 자칫 처신을 잘못했다가는 기레기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기자사회의 '끗발'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회가 변함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는 아직도 기자권력을 믿고 부탁과 청탁을 간혹 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 들어주지 못한다. 최근에 흔쾌히 수락한 부탁은 입사지원서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글을 한 번 감수해달라는 것이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응한 재능기부였다.

얼마 전 편집기자협회보에 실린 한 기사 중 일부다. "한국 사회를 떠도는 정체불명의 말들이 있다. 그중 신문 헤드라인이 선도하는 오류 몇 가지가 있다. 이 분야 강자는 사용 빈도와 생명력이 강한 '수입산'이다. 기사를 볼 때마다 빨간 펜으로 수정해도 편집기자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고 사용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할 것은 수입산은 대충 넘어갈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완전히 틀린 표기다."

글로 먹고산다는 기자를 17년 넘게 하면서도 솔직히 '수입산'에 대한 정확한 뜻풀이를 몰랐다. 수입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정도의 얄팍한 수준이었다.

"'~산(産)'은 주로 지역이나 연도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에서 또는 그때에 산출된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수입은 지역이 아니다. 수입을 꼭 쓰고 싶으면 산을 떼고 '수입 소고기'로 표기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외국산 소고기'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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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자로서의 목표는 기본기를 탄탄하게 닦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확한 개념 이해와 신조어 배우기를 선택했다. 눈만 뜨면 생겨나는 신조어 탓에 독해를 하지 못해 무너짐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0대들이 사용하는 은어라며 애써 평가절하했지만, 요즘은 사회현상을 반영한다고 하니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탄탄한 기본기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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