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전환 부른 '전면점화 추상'을 만나다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이 '2018 화제의작가 김환기전'을 열었다. '환기블루'로 세계를 사로잡은 한국현대추상미술의 선구자,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경남 첫 전시다. 윤슬미술관은 도내에서 처음으로 환기미술관과 손을 잡고 몇백억 원에 이르는 작품 가격과 보험 가액 등을 부담하며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다. 왜 김환기인가? 몇 가지 핵심어로 김 화백의 작품 세계와 그 가치를 들여다봤다.

◇추상미술 1세대, 김환기 = 전남 신안 출생인 그는 일본에서 공부했다. 1936년 일본 개인전을 끝내고 귀국해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이때 항아리를 중심으로 산, 달, 매화처럼 한국적 정서를 조형화했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프랑스 파리에 터를 잡았고 1963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뉴욕에서 작업을 하며 '전면 점화(點畵)'를 완성한다. 이는 한국 현대 추상화에 커다란 획을 긋는 작품이다.

▲ '매화와 항아리' /김해문화의전당

◇한국 최초 추상회화 = 1938년 작 '론도'는 한국 추상화의 선구작이다. 2013년 2월 미술품 최초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535호로 등록돼 가치를 인정받았다.

'론도'는 자연형태를 크게 떠나지 않았던 1960년대 이전의 작품을 대표한다. 김 화백은 1950년대까지 엄격하고 절제된 조형성 속에 한국의 고유한 서정 세계를 구현했다.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선 점, 선, 면 등 순수한 조형적 요소로 내밀한 서정 세계를 심화했다.

◇아내 김향안(1916∼2004) = 김향안은 김 화백을 지원한 아내이자 수필가다. 서울에서 교수를 하던 김 화백은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고 싶었다. 이 말을 들은 김향안은 곧바로 프랑스로 떠날 준비를 한다. 김 화백보다 1년 먼저 파리에서 지내며 매니저 역할을 해냈다.

'한번은 술 마시고 돌아와서 나 파리에 간다, 너도 데리고 가지. 그런 적이 있은 후, 다음날부터 아내는 불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산만한데 아내는 치밀하다. 나는 격하기 쉬운 사람인데 아내는 냉정하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아내와 의논을 하면 얻는 것이 있다.'

김 화백이 1952년 3월에 쓴 '산처기(山妻記)'의 일부다.

▲ 김환기(왼쪽)와 아내 김향안. /김향안 에세이 <월하의 마음> 발췌

◇한국 최초 국외 비엔날레 참가·수상 = 김 화백은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선정되어 브라질로 향한다.

이 자리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새롭게 도전할 자신감을 얻는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아돌프 고틀리브에게 큰 자극을 받았다는 그는 50대가 넘어 뉴욕에 진출했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뉴욕시대'를 맞는다.

◇전면 점화(點畵) 구축 = 김 화백은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작품을 하나 선보인다.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다.

국내 미술계는 당황했다. 점을 찍고 여러 겹의 네모를 둘러싸는 점화는 아주 낯설었다. 하지만 이는 국내 화단이 인정한 첫 전면 추상화가 됐다.

그는 첫 전면 점화를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실험을 했다. 점, 선, 면으로의 귀착을 위한 다양한 조형 연습은 추상, 십자구도 산월 추상의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경매 최고가 경신 = 김 화백이 유명한 데는 비싼 그림 값도 한몫한다.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붉은 점화(1972년 작)'가 한국 최고가 6200만 홍콩달러(한화 약 85억여 원)에 낙찰됐다.

이에 대해 성민아 환기미술관 학예사는 "김 화백은 한국 대표 선수다. 가격이 전부가 아니지만 세계 미술계에서 지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 미술이 동반 상승하는 것이라고 여기길 바란다"고 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은 매번 최고의 평가를 경신하며 새로운 평을 받는다. 그의 친구 김광섭(1905∼1977) 시인 작품 '저녁에'의 행에서 따온 제목으로 알려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윤슬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1971년도 연작이다. 면화 위에 청회색 유화물감으로 점을 먼저 찍은 후 그 틀로 사각형을 두르는 형태는 동양의 정서를 물씬 풍긴다. 유화지만 점이 마치 먹처럼 번져나간 작품. 이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추상회화가 됐다.

▲ '17-IV-71 #201(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김해문화의전당

◇그리고 김환기의 고백 =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어렵다면 그가 쓴 일기를 살짝 엿보자. 김 화백은 "미술은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것이었고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모색하는 것이다"고 적었다.

특히 1970년 1월 27일 자 일기 중 일부가 핵심이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그의 그림은 결국 고향이자 자연이다.

◇도내 첫 회고전 = 윤슬미술관은 지난달 전시를 개막하고 김 화백의 작품 102점, 아카이브 32점, 유품 31점, 영상자료 3점을 내보였다.

1전시실에서 '뉴욕시대', 2전시실에서 '동경·서울시대', '파리·서울시대' 대표 작품을 볼 수 있고 3전시실에서 작가의 연보와 사진, 팸플릿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영준 예술정책팀장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김환기가 차지하는 자리는 어디인가, 왜 김환기인가 묻는다. 국내 현대미술사 최대 발명품은 추상화다. 그는 최초 습득자이다. 김해에서 현대미술사 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추상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대중화됐다. 그는 더 훌륭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윤슬미술관은 앞으로 김 화백의 작품을 보다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다. 오는 12일 '김환기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갤러리 토크를 열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연계 감상 교육프로그램을 토요일마다 진행한다. 전시는 2월 17일까지. 입장료 2000원. 문의 055-320-1263.

▲ 지난달 15일 윤슬미술관에서 열린 갤러리 토크 모습. 성민아 환기미술관 학예사가 김환기 화백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해문화의전당

※참고문헌 <내가 그린 점 하늘 끝에 갔을까>(이경성), <김향안 에세이 월하(月下)의 마음>(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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