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이제 인간애를 자극하는 전설로 굳어져 가는 추세다. 얼굴을 감추고 이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사랑의 성금을 쾌척한 후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들의 선행이 각박해지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데워준다.

몇 년 전부터 매년 이맘때면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전국 곳곳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경남도 마찬가지다. 거창군에 사는 한 할머니는 채소를 팔아 어렵사리 모은 돈 50만 원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달라며 면사무소에 맡겨왔으나 끝내 이름은 드러내지 않았다. 한 손이 한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의지의 소산이요, 겸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534만 8730원을 맡긴 기부자도 있었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발견된 이 기부금은 대강의 신원조차 알 수 없을 만치 철저하게 자신을 감춘 익명의 독지가가 기탁한 것이다. 돈의 성격이 1년 동안 부었던 적금임을 알렸을 뿐이다. 그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내년에는 우리 이웃들이 올해보다 더 행복하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새해 들어서도 천사들의 활동은 이어지고 있다. 밀양의 한 주민은 사과농사를 지어 번 돈 1000만 원을 선뜻 내놓았지만 역시 얼굴을 가렸다. 가난한 나머지 춥게 사는 딱한 이웃을 위해, 병원비나 수술비가 없는 노약자나 중증 장애인을 도와달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세밑 인정을 나누기를 주저치 않았다.

기부천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공동체 사회가 한결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아쉬운 것은 이번 연말연시는 예년보다 상대적으로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침체된 경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렇지만 설 대목까지는 근 한 달 남았다. 예기치 않은 어디에선가 발꿈치를 들어 달려오는 기부행렬이 쇄도할지 알 수 없다. 꼭 액수가 많아야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코 묻은 돈이면 어떻고 연탄 한 장이면 또 어떻겠는가. 그 속에 정말 더불어 살겠다는 진정성이 담겨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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