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며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크게 기려야 할 해이다. 3·1운동과 임정수립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근간이며 특히 3·1운동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민족자결을 선언한 세계적으로 조명해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하동에서 제2의 3·1운동이라 할 저항운동이 일어난 사실과 이와 관련된 일제에 의한 수형록을 찾아낸 것은 경남의 긍지를 더욱 높이게 할 대단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에 의해 밝혀진 1927년 제2의 3·1운동은 기미년 이후 영호남에서 일어난 저항운동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고 한다.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형사공소사건부' '집행원부' '일제감시카드' '경남도 보고서' 등 자료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제2의 3·1운동 전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의거로 옥고를 치르거나 유명을 달리한 독립운동 선열이 46명에 달한다. 뒤늦게나마 이분들에 대해 정부에 서훈을 신청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에는 이 3·1독립운동의 뿌리를 갑오년 농민항쟁에서 찾는 연구가 활발하다. 갑오년 농민항쟁을 주도한 것은 동학이었고 일제 탄압에 의해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 후 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항일 독립무장투쟁까지 이어졌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동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무대이며 작품의 씨앗 또한 갑오년 농민항쟁이다. 이런 면면함이 있는 역사의 고장임에도 그동안 향토사에도 제2의 3·1운동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대개의 향토사처럼 철저한 고증을 하지 않은 탓도 있으나 우리 역사의 아픔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났으나 건준 등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좌우 대립으로 희생된 이들도 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하나로 지난해부터 2020년 2월까지 군내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는 역사를 바로 하는 것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더 많은 성과가 나와 경남도민과 함께 기릴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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