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감·웅장한 음악 없앤 '절제의 미학'
흑백 영화 몰입감 높여 인물 표정·감정선 드러내
OST 등 배경 사운드 대신 거리 시위·생활 소음 활용
감독 유년시절 가정부 회상…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동정과 연민이 아니다. 사랑이다.

영화 <로마>는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로마 지역, 한 중산층 가정의 젊은 가정부가 주인공이다. 아주 거칠고 단순한 예이지만 미국 영화였다면 고용인의 횡포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가정부였겠고, 한국 영화였다면 물질적 성공을 바라는 욕망으로 가득 찬 가정부 이야기였겠다.

▲ 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인 로마는 이탈리아 로마가 아닌 멕시코시티의 중심가 로마다. /스틸컷

<로마>는 아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영화를 검색하면 '감독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작품'이라고 나온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걸작이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연출 방식이 모두 집약된 영화라고 평가받는 <로마>.

감독이 영화 마지막에 넣은 메시지 "리보를 위하여"처럼, 말하고 싶다. "여성을 위하여".

▲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영화로 유년시절 자신을 돌봐 준 가정부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스틸컷

◇그녀를 위한 감독의 자전작

영화 <그래비티(Gravity)>로 잘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 그는 멕시코인이다. 2006년에 제작한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후속작으로 <로마>를 연출하려고 했지만, 12년이 지나서야 완성됐다. 그가 로마에서 살던 3년간 기억을 더듬어 만든 영화는 그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았던 가정부 클레오(배우 얄리트사 아파리시오)의 시선을 내세운다. 클레오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유년시절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함께 살았던 리보 로드리게즈.

클레오는 개똥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고용인 소피아(배우 마리나 데 타비라)에게 차를 내주고 그녀의 아이 넷을 돌본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클레오는 아이들의 머리를 정성껏 쓰다듬는다. 클레오는 아이들과 거실에서 재밌는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기도 하고, 소피아 가족 여행에 언제나 함께한다.

▲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영화로 유년시절 자신을 돌봐 준 가정부를 주인공으로 그렸다. /스틸컷

그녀가 언제부터 어떻게 소피아 가족과 함께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묵묵하고 성실한 클레오는 어느새 소피아 집의 중심을 잡는다.

클레오와 소피아는 단순한 고용관계가 아니다. 아마도 같은 여성으로서 동지애를 느끼지 않았을까.

소피아는 남편의 '의도적인 부재'로 아파하고 클레오는 책임감 없는 남자친구로 인해 아주 지독한 상처를 입는다.

영화 막바지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새로운 모험을 해야 한다고. 그러기에 아주 가까이 뭉쳐야 한다고. 소피아와 아이들, 클레오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사랑을 느낀다.

◇외로운 삶, 아픈 역사

<로마>는 클레오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1970년대 멕시코를 보여준다. 두 여성의 삶과 당시 시대상은 아주 닮았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자주 떠다니고 "발전된 미래"를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TV는 차력쇼와 코미디 프로그램을 자주 내보이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말은 토지분쟁, 정부의 횡포 등이다. 영화 배경 음악이 따로 없다. 바로 이런 일상적 소음이 <로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 '성체 축일 대학살'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당시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세력은 학생 100여 명을 거리에서 살해했다. 클레오는 뱃속 아이를 위해 가구점에 들렀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총을 든 한 사내가 그녀를 떠난 남자친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 비극은 클레오 개인뿐만 아니라 멕시코의 큰 상처이자 아픈 역사다.

▲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스틸컷

영화는 미장센이 엄청나다. 그래서 어느 한 장면도 허투루 볼 수 없다.

가부장적인 남성상도 끊임없이 비판하는데, 소피아 남편이 모는 자동차는 집 안 차고에 들어가기 버거울 정도로 크다. 그래서 언제나 그들이 키우는 개의 똥을 밟는다. 클레오가 개똥을 치우는 첫 장면과 오버랩되는데 말 그대로 "개똥이나 밟아라"다.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자신이기도 하다. 그가 <그래비티>를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마루니드>(연출 존 스터지스)를 영화 중간에 넣고, 지진과 파도, 산불 등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도 말하며 자신의 철학을 녹여낸다.

좀 더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알폰소 쿠아론. 그가 유년시절 겪었던 사랑과 경험은 그를 존재하게 했다.

어쩌면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전체를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스틸컷

◇넷플릭스와 리좀에서

영화는 넷플릭스(동영상 플랫폼)와 창원 씨네아트 리좀에서 볼 수 있다.

<로마>는 넷플릭스로 유통됐다. 미국 중심 블록버스터 대작을 만들었던 감독의 선택이라 영화계는 시끄러웠다. 더욱이 흑백 영화이자 세세한 일상 소음까지 구현해야 했던 작품이기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어가 아닌 외국어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기에, 관객이 가장 쉽고 편하게 영화를 볼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로마>는 영어 대사를 자막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멕시코 원주민어에 자막이 있다.

이는 또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영어(미국)가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으며 전 세계 어디서든 공평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는 마치 남성이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으며 여성이 어디서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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