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 표창 기념 항일·작품활동 재조명 행사 열려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이 몸을 바친다. 우리 학우동인회의 조직 목적에 대하여 비밀을 끝까지 지킨다. 나는 조국과 민족, 학우동인회에 배반하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는다.'

1943년 18살 소년은 혈서로 맹세했다. 바로 고 괴암(魁巖) 김주석(1927∼1993) 화백이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지역 1세대 화가다.

지난달 29일 창원 사보이호텔에서 '괴암 김주석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축하 및 작품세계 재조명'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괴암 김주석기념사업회가 김주석 선생이 지난해 광복절에 독립유공 훈장을 받은 것을 축하하고 그가 항일 운동을 어떻게 펼쳤는지, 이후 지역에서 어떤 작품 활동을 했는지 알렸다.

오창성 작가가 발표자로 나서 "김주석 선생은 1942년 경성전기학교 1학년 시절 일본인이 한국에 대한 비인도적이며 침략적 행위에 대한 내용의 기념사를 들으며 분노했다. 이듬해 친구들과 학우동인회 항일결사대를 결성하고 혈서로 맹세했다"며 "권총, 다이너마이트, 극약 등 무기를 구입하고 신문배달, 작품판매 등으로 재정을 확보하고자 했다. 결사대의 계획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조선 총독과 일본 정치 고위 관리를 암살하고 통신 군사시설 파괴, 독립군에 정보 제공, 우리말 우리글 고수 투쟁 등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주석 화백은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혀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는 당시 형무소의 모습과 행해졌던 고문 등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는 오늘날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됐다.

▲ '괴암 김주석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축하 및 작품세계 재조명' 행사에서 소개된 김주석 화백의 애국시와 작품. /이미지 기자

김주석의 작품 세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오 작가는 "김주석 선생은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 살았다. 트라우마도 아주 심했다. 선생은 그림을 더 적극적으로 그리며 치유했다"고 설명했다.

김주석 화백은 사실적 풍경화 묘사에서 자연의 신비를 더해 상상했고, 우연한 효과에서 추상적인 환상세계로 나아갔다. 특히 자유상상화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새로운 창작에 몰두했다. 상념과 환상의 세계는 그의 몸과 마음이 더 자유로워지는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이번 행사를 치른 전보경 (사)괴암 김주석기념사업회 이사장은 "2017년 선생의 항일운동을 상세히 기록한 <자유상상의 나래를 펴라>를 출간하는 등 지속적으로 선생의 독립운동을 알리고 있다. 올해도 더 박차를 가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 김주석 선생의 제자를 중심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허은주 무학화가협회장은 "그동안 오창성, 황원철, 박춘성 등 많은 작가가 김주석 선생의 작품 세계를 연구·발표했다. 우리는 선생님 작품과 회원 작품을 매년 선보일 것이다"고 말했다.

'가슴에 끓는 피가 식기 전에/빼앗긴 강토를 찾아/잃었던 조국을 찾아/힘차게 더 힘차게/울려라 울려 퍼져라/…'.

1942년 1월 김주석 선생이 지은 애국시. 그의 항일운동과 작품 세계가 3·1운동 100년을 맞는 2019년에 큰 울림을 준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