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지도 고르지도 못한 세상살이
못 가진 자를 위한 복지 혜택 늘려야

고샅길에서 제집 식구 발소리가 들리면 마루 밑 누렁개가 먼저 꼬리를 치며 달려 나오고 뒤꼍 남새밭을 헤집던 어미닭은 다급히 병아리를 불러 울바자 밑으로 숨어든다. 외양간 바람벽에 등을 비비던 황소가 목을 길게 빼고 감나무 옆 우리에서는 나무 울짱 사이로 돼지가 코를 벌름거린다. 시골집 마당 안 날짐승 길짐승들은 궁벽한 살림살이의 소중한 밑천이었다.

어린 배춧잎을 죄 뜯어먹거나 멍석에 널어둔 곡식을 헤집어 부지깽이 세례를 받기도 하지만 하루 이틀 걸러 낳는 달걀은 푼돈벌이도 되고 아버지 밥상에 찜으로 오르거나 우리들 도시락 최고 반찬이었다.

소는 가장 값나가는 재산으로 도시로 유학 간 형들의 학비를 책임지면서 집안의 최고 상일꾼이다.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소는 이웃집에 품을 팔아 삯을 톡톡히 벌기도 했다. 부엌문 앞에 둔 드므에는 항상 쌀 씻은 뜨물에 채소 다듬은 찌꺼기가 차있었다.

끼니때가 되어 돼지가 꿀꿀거리면 그 구정물을 구유에 가득 붓고 쌀이나 보리등겨 한 바가지 퍼준다.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는 짐승이라 키우기도 쉽고 한 배에 여남은 마리의 새끼를 한 해 두 차례 낳아 기른다. 우리들 과잣값이나 설빔, 어른들 막걸리 추렴이나 담뱃값에다 장날이면 할머니 쌈지에서 나오는 돈은 모두 이 돼지새끼들이었다.

이 복덩이가 새끼를 낳는 날이면 짐승이지만 사립에 금줄을 치고 식구들이 번을 섰다. 사람이 없을 때 새끼를 낳다 보면 산통에 뒤채는 어미에게 깔려 죽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새끼 돼지는 처음 빨았던 젖꼭지를 바꿔 다른 젖꼭지를 빨지 않는다.

여남은 마리의 형제들이 다 똑같지 않으니 몸집이 크고 튼튼한 놈은 젖이 잘 나오고 빨기 좋은 꼭지를 두세 개씩 차지하고 그렇지 못한 놈은 부실하고 빨기 힘든 젖꼭지에 매달리거나 더러는 하나도 차지 못하고 밀려난다.

이렇게 되면 튼튼하게 태어난 녀석은 털에 윤기가 돌고 더욱 건강하게 자라지만 약한 녀석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형제들 틈바구니에 치여 죽기도 한다. 어미 돼지가 새끼를 낳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을 지키고 앉아 태어난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놓았다. 출산이 끝나면 약한 녀석을 좋은 젖꼭지에 물리고 덩치 큰 놈을 부실한 젖꼭지에 물린다. 이렇게 사나흘 공을 들이면 새끼를 고르게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는 힘이 좋은 놈이 물었던 부실한 젖꼭지도 젖이 잘 나오게 된다. 젖을 뗄 때도 큰놈 먼저 하고 좀 처진 놈만 남겨 며칠 더 양껏 먹였다. 장날 고르게 자란 우리 돼지 새끼들은 좋은 값으로 금방 팔려 두둑한 돈을 쥘 수 있었다.

세상살이가 날이 갈수록 움푹진푹 고르지 못하다. 팬 곳은 더욱 깊이 파이고 도드라진 곳은 더 솟아올랐다. 가진 자들이 한 푼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손전등도 없이 혼자 아찔한 현장에다 내몰아 스물넷 젊은 노동자가 처참하게 숨졌다. 그들은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가,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 농민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숨져간 모녀가 이 나라 살림을 망친다고 야단이다. 최저시급이 오르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오히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살림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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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 밀쳐내고 좋은 젖꼭지 차지해봐야 기껏 두세 개뿐이다. 빨지 않는 젖꼭지는 말라붙어버리고 덩치 좋은 한두 놈은 고루 자란 여남은 마리 반값도 못 된다. 가진 자들에게 조금 더 걷어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면 모든 젖꼭지가 다 흘러넘쳐 고루 잘살게 되거늘 도리어 가진 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어려운 이들의 복지 혜택을 줄이자는 이들이 있다. 새끼돼지 젖 물리는 지혜도 모르는 자들이 나라를 다스린다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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