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주 P&I소프트 대표

최원주의 부모님은 통영 도천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가게 코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버스 도착 시각을 달력 뒷면에 손수 써서 가게 벽면에 붙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시각을 보려고 가게로 자주 드나들었다. 아버지는 도착 시각이 바뀔 때면 매번 버스 차고지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아버지는 거기서 바뀐 시각을 보고 종이에 적어왔다.

최원주가 9살이었던 1982년부터 아버지는 15년 남짓 이 일을 반복했다. 최원주는 "아버지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셨죠.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 관심을 끌까 궁리하며 남들이 시키지 않는 재미난 일을 자주 꾸미셨어요. 뭘 만드는 걸 워낙 좋아하셨거든요"라고 말했다.

 

통영 이야기가 보물

최원주(45) P&I소프트 대표는 재주꾼이었던 아버지를 빼닮았다. 최 대표는 15년째 고향인 통영에서 웹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P&I소프트는 통영을 기반으로 경남 도내 지역의 관광·숙박 정보를 웹 콘텐츠로 만드는 업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해요. 통영 사무실 직원들 모두 통영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에요. 저와 직원들은 누구보다 통영을 잘 알고 통영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우리는 시와 무관한 콘텐츠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흔한 통영 꿀빵조차도 우리는 '이 꿀빵이 왜 통영에서 탄생했을까?' 거기에 집중해요. 꿀빵에 얽힌 통영 사람들의 추억을 길어 올리는 거죠. 소매물도 작은 할매 집까지 꼼꼼하게 알 수 있는 게 우리 장점이에요."


통영시 공식 SNS 운영

최원주 대표는 P&I소프트가 통영시 공식 SNS를 직접 꾸리는 걸 가장 뿌듯하게 여긴다고 했다. P&I소프트는 2016년부터 통영시 공식 SNS(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를 운영하고 있다. 통영시 블로그에는 벌써 콘텐츠 470여 개가 쌓였고 약 5300명이 이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다.

P&I소프트는 통영시 블로그를 더 알리고자 '동백이'라는 캐릭터까지 만들었다. 동백이는 머리에 동백꽃을 꽂은 갈매기 캐릭터다. 똥그랗고 까만 눈과 가끔 보이는 윙크가 매력 포인트다. P&I소프트는 동백이를 활용해 기관의 다소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꿨다.

"처음엔 통영시 홈페이지만 있으면 되지, 다른 SNS가 굳이 필요하냐는 목소리도 있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동백이도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죠. 콘텐츠 품질이 달라지니까 사람들이 댓글도 많이 달았어요. 이를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P&I소프트를 많이 알리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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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주 P&I소프트 대표. /박일호 기자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

나고 자란 곳은 함부로 못 떠난다고 했던가. 최 대표는 2004년 고향으로 내려왔다. 수원에서 대학원을 마친 뒤다. 그는 "여러 번 취업 기회를 놓치니 그때부터 세상만사가 싫고 마음이 불안하고 허했어요. 고향은 유일한 안식처였어요"라고 말했다.

2004년 그해였다. 최 대표는 고향에서 아버지처럼 재미난 일을 도모했다. 그는 고향 통영에 숨어 있는 민박집 정보를 웹에 저장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을 구상했다. 그 생각은 고생길을 열었다.


발로 뛰며 완성한 통영민박넷

2004년 늦가을께 그는 통영 섬을 떠돌았다. 그는 자발적 고생길 위에서 민박집을 향해 갔다. 민박집을 찾으면 곧장 사진을 찍고 주인을 설득해서 전화번호를 얻어왔다. 이 자료를 모두 컴퓨터로 옮겼다. 그렇게 시작한 게 '통영민박넷' 웹사이트다.

"통영에 섬이 얼마나 많은지요. 말이 데이터베이스지, 사실 카메라 들고 무작정 찾아다닌 겁니다. 오전에는 소매물도, 오후에는 욕지도로. 할매들이 "뭐 하는 기고?" 라며 의아해하셨죠. 일일이 찾아가서 사진 찍고, 이름 없는 민박은 제 나름대로 이름도 붙여서 통영민박넷에 올렸어요."

최 대표는 사진 찍다 잡혀간 적도 있다고 했다.

"혼자 카메라 들고 남의 집을 찍고 다니니까 이상하게 볼만도 했죠. 어느 날은 욕지도에 갔는데 한 할아버지가 저를 간첩으로 신고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서 면사무소까지 끌려갔죠. 간첩으로 조사받을 일은 평생 다시 없지 않을까…."


통영시와 첫 협약

최 대표는 이 '통영민박넷'을 기반으로 2005년 사업을 시작했다. 사무실은 통영 서호동 네온사인 반짝이는 골목 어느 곳에 있었다. 그는 이 사무실을 '쿵짝쿵짝'이라 표현했다. 쿵짝이는 사무실에 2005년 말 통영시 공무원이 찾아왔다. 통영시 홈페이지에 '통영민박넷' 배너를 넣자는 제안이었다. 그때 최 대표는 "됐구나!" 싶었다고.

"통영시청 공무원이 제가 모은 숙박 정보를 시청 홈페이지에 활용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그 뒤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셨어요. 저는 그때 어느 정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놓은 상태라 자신 있었어요. 그동안 모은 DB를 보여드리니 공무원이 이 정도면 되겠다고 했어요. 2005년 말쯤에 통영시와 제가 모은 숙박업체 DB를 사용하는 협약을 맺었죠."


장군봉에서 떠올린 P&I

최원주 대표는 통영시와 숙박 정보 제공 협약을 맺은 계기로 2006년 사업을 본격화했다. 회사 이름도 P&I소프트로 바꿨다. 처음엔 'P(Passion·열정) 소프트'로 할까 했다. 뒤에 'I(Imagine·상상)'까지 붙은 건 그가 대매물도에 갔던 어느 날 덕분이다.

그는 대매물도 장군봉에 올랐다. 장군봉 꼭대기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니 유난히 화창했다고 한다. 그렇게 햇볕을 받으며 눈을 감으니 '열정을 가지고 상상하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오스테이

P&I소프트는 내년에 전국 숙박 정보 플랫폼 '오스테이'를 연다. 인터넷·모바일 서비스인 '오스테이'는 오디너리 스테이(Ordinary Stay)의 줄임말로 '평범한 머무름'이란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P&I소프트는 전국에 숨어있는 민박집 등을 찾아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숙소를 찾는 사람과 실제 숙소에 다녀온 사람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사업자가 특정 숙박업체를 광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내보고 싶어요. 저는 이 방식이 결국 숙박 플랫폼의 최종 형태이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회사가 할 일은 전국 곳곳의 숙박 업체를 찾아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거예요. 일단 우리 회사가 보유한 기존 2000여 개 숙박 정보를 바탕으로 시작하고, 전국 각 지역에서 민박집을 발굴할 운영자를 SNS로 모집할 계획이에요."


시작은 오케이!미국

최원주 대표가 P&I소프트를 꾸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느닷없이 IT업계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그가 웹페이지를 처음 만든 건 대학생 때다. 그는 2000년 6월 1년간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기자가 본 바로 그는 혼자 미국에 살면서 감당한 1년의 고난사(史)를 남들에게 늘어놓지 않고서는 못 배길 성격인듯했다.

그가 대학교에서 전공한 '전자공학'과,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타고난 성격이 만나는 절묘한 지점에 바로 '웹사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밀레니엄(2000)은 '닷컴(.com)' 파도를 몰고 왔다.

"1999년 5월쯤에 미국으로 가서 꼬박 1년을 살았어요. 그때 혼자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요. 무거운 짐 나르는 일 하면서 살았어요. 이 고생한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들어온 2000년 6월, 벤처기업은 물론 일반인들도 너도나도 웹사이트를 만드는 '닷컴붐'이 일었어요. 저는 '오케이미국'이란 웹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일종의 미국 여행 정보 사이트인데 여기에 제가 미국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막 올렸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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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주 P&I소프트 대표. /박일호 기자

"월요일이 즐거운 회사이길"

그는 젊은 시절부터 통영에서 회사를 꾸려온 소회를 밝혔다.

"일은 있는데 정작 같이 일할 사람이 없었어요. 젊은이들이 통영을 다 떠나고 없었죠. 그땐 저도 젊었는데 서러웠어요. 여름 방학이 끝나면 거리가 휑할 정도였어요. 젊은 나이에 나는 여기서 무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직원들이 참 고맙죠. 저는 우리 직원들이 통영에서 최고라고 자부해요."

최원주 대표는 며칠 전 직원들과 간식값 내기로 사다리 타기를 했다. 최 대표가 딱 걸렸다. 그는 "이상하게 제가 자주 걸려요"라며 웃었다. 그는 사원들이 회사에서 즐거워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했다.

"팀워크가 정말 중요해요. 신입사원을 뽑으면 회사 선배들과 빨리 친해지도록 해요. 직원들이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도 회사 와서 사람을 만나고 싶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가끔 우리 회사 이름에 P를 People(사람)이라고도 주장해요. 나름의 고민도 있어요.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서요. 직원들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생각해요. 창업 초창기 때는 저도 젊으니까 함께했는데 이제 눈치껏 슥 빠져요. 퇴근도 일찍 하고요."


"옛날얘기가 좋아요"

퇴근하면 최원주 대표는 아이 보기 바쁘지만 틈틈이 책 읽는 걸 즐긴다고 했다.

"쉴 때는 책을 주로 읽어요. 에세이를 좋아해요. 에세이는 추억을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옛날얘기가 좋아요. 그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잖아요. 최근엔 통영 한산신문이 인터넷으로 옛날신문보기 서비스를 해서 지난 신문을 한참 읽었죠. 저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인 것 같진 않아요. 참, 한때는 이병철 회장이 쓴 모든 책을 다 모은 적도 있어요. 성공해야겠단 생각에 빠져서 열독했죠. 그것도 잠깐이었죠. 이제 자기계발서는 잘 안 읽어요. IT업체를 이끌면서 스티브 잡스처럼 거창한 꿈도 꾸곤 했지만, 이젠 통영에서 건강하게 걱정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어요. 적당히 벌고 적당히 주고 적당히 남기며."


"아버지가 만든 파란 평상을 기억해요"

최원주 대표는 매일 SNS에 일상을 기록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글솜씨가 제법 좋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최 대표에게 밥 굶을 일 있느냐고 말씀하셨다지만, 그는 결국 길을 조금 돌아 고향으로 와서 고향 이야기를 큰 업(業)으로 삼아 밥 먹고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수양버들 나무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그 나무 아래 커다란 평상을 만드셨죠. 새파란 페인트도 칠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죠."

최원주 대표는 통영 동네에서 만들고픈 새파란 평상 같은 것들이 아직도 많은 듯했다.

최 대표는 "우리 회사 좌우명은 '사람 냄새 나는 회사'에요. 회사 규모를 키우기보다 통영에서 그저 부지런히 일하면서 동네 곳곳에 쌓인 소소한 이야기를 콘텐츠로 녹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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