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하고 군더더기 버리는 단순함 추구
농사뿐 아니라 삶을 짓는 올 한 해 기대

폭염으로 농작물이 말라죽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한 해가 저물었다. 타죽은 작물을 뽑고 다시 심기를 반복해야 하고 수확량도 턱없이 적어 힘든 시간도 있었다. 그러함에도 열매를 거두는 일은 수확량과 상관없이 그 자체가 경이롭고 행복하다. 하늘이 준 농부의 특권은 신비 그 자체이다. 만나는 농부들도 그렇게 얘기한다. "내년에 잘 지으면 되지 뭐." 그래, 맞다. 내년에 잘 지으면 된다. 이것이 농부의 삶이다.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아침에 기대감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야 나를 새롭게 하는 한 해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도시에 살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분주함이다. 새벽부터 일과가 시작되어 밤늦은 시간까지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런 삶은 나를 보지 못하게 했고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나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했다. 일상을 분주하게 사는 것과 마음을 다해 내 삶을 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은 삶의 자리를 옮기는 이유가 되었다. 시골로 삶을 전환한 이유도 분주함을 넘어 단순함으로 내 삶이 더 깊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삶을 바꾼다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돌아보면 도시에서 길들여진 삶의 방식에서 농부의 삶을 익히느라 허겁지겁 시간이 채워질 때도 많았다. 농부로 살려면 미리 밭을 준비하고 때에 맞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때를 몰라 한 일을 다시 하거나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할 때도 많았다. 선배 농부님들이 그 일은 마쳤느냐 물어주고 도와주었기에 지금의 삶이 가능했다. 다양한 작물을 시기에 따라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물론 아직도 초보농사꾼이라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할 것이 많다. 농사가 어디 한두 해 배워서 되는 것이랴. 평생 배움의 자세로 하늘에 기대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제 적응기를 마무리하고 단순한 삶을 사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농사의 규모도 더는 넓히지 않으려 한다. 지금 농사짓는 땅을 살리고 가꾸는 일에 더 집중하려 한다. 삶을 정돈해야 처음 마음을 잘 지킬 수 있다.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을 하려는 것이다. 삶이 더 단순해져야 한다. 단순하다는 것은 모자란 것도 서툰 것도 아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한 수련을 하는 것이다. 수련은 깊이를 더해주고 나아가 여유를 누릴 길도 된다. 삶의 방향과 색깔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나의 바람은 농사와 목회가 나를 일구고 깊게 하는 수행이 되면 좋겠다. 수행자의 삶이 나를 새롭게 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 바람을 느끼고 비를 맞고 햇볕의 따스함을 찬찬히 음미하며 살고 싶다.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고 가만히 서서 자세히 보아야 한다. 내게 들려주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생명을 가꾸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하겠다. 이 과정을 통해 주어질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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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가족들과 함께 한 해 동안 지어갈 농사계획을 세우고 밭 지도를 그려 보았다. 이제 삶의 중심이 농사가 되었다. 3월 감자 농사를 시작으로 고구마, 생강, 수수, 들깨, 콩, 양파 등 작물도 다양하다. 밭 준비를 하고 시기에 따라 작물을 심고 가꾸어야 한다. 때를 맞춰 사는 삶이 나를 더 정돈하는 과정이면 좋겠다. 올해도 기후변화와 알 수 없는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하다. 어떤 바람이 불고 지나갈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새롭게 하는 삶의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올 한 해는 삶을 짓는 농부로 살고 싶다. 뿌리가 깊어지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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