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 붕괴로 곳곳서 갈등
작은 일부터 실천해 교류했으면

최근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미우새>에 배정남이라는 배우가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 적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하숙집 할머니가 어린 배정남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줬다는 내용이 뭇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아이를 낳으면 동네가 키운다'라는 말이 있었다. 서로 품앗이를 통해 농사일이나 관혼상제 등의 일을 도우며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 대부분은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도 대면하지 못한다. 동네에 버려진 쓰레기는 누구도 치우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내 집 앞도 청소하지 않는다. 이웃들은 주차, 소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누군가 고독하게 죽음을 맞고 있어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한 채 넘어가는 일도 있다.

이같이 우리 사회는 공동체 붕괴로 말미암아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공동체의 와해 때문에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데 있다. 지방분권은 제도적 개혁을 통해 일정 수준에 이르렀지만, 주민자치는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주민자치'는 지역 주민이 '내가 이 지역의 주인이다'라는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주민이 동네를 자기 것이라고 느낄 때, 그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깨끗해지고 살기 좋게 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스위스 글라루스주에서는 1년에 한 번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라는 마을 총회를 개최한다. 주민이 표결을 통해 주의 법(法)을 제·개정하거나 1년 예산을 직접 결정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마을에서 체감하는 문제를 직접 살펴보고 서로의 의사를 경청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창원에도 곧 주민자치회가 전면 도입되어 주민들이 지역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하지만 주민의식이 제도에 미치지 못한다면 주민자치회의 도입이 창원의 란츠게마인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만 더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주민자치회를 전면 도입하기에 앞서 와해된 공동체를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조그마한 일부터 시작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동네 청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청소하면서 소통하면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동네의 공통된 문제까지 자연스레 얘기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의 교류가 차츰 쌓여 나갈 때 주민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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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의창구 팔룡동에서 추진하고 있는 '골목청소공동체 육성사업'은 작지만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주민 공동체 재건'과 '주민자치 정착'이라는 묵직한 과제를 주민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청소부터 시작한다는 시도를 칭찬할 만하다. 최혜주 여성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우리 바르게살기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자율방재단의 3개 단체가 지난 11월 첫발을 내디뎠는데, 올해부터 더 많은 단체와 기업 등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저마다 불쏘시개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이뤄가기 위해 일단 동네 청소부터 시작해 보자.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이웃을 위한 작은 실천이 지역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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