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체면 가득찬 삶 살았다면 내려놔야
익숙한 나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가길

얼마 전 퇴임한 지 10년 된 경남도청 공무원을 만났다. 그는 퇴임하고서 현재까지 비슷한 시기에 퇴임한 직원들과 함께 국외 자유여행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또 등산과 골프, 1일 여행, 부부 동반 모임·여행 등도 요일별로 계획을 짜서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그는 퇴직 이후 어떤 다른 직업도 갖지 않았고, 새로운 일도 하지 않은 채 10년 동안 계획적으로 삶을 꾸려왔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매우 행복해보이는 인생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자만의 생활과 여유를 찾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단다. 얼마 전 아내가 교회 일로 3~4일 연수를 가서 혼자 생활하게 됐는데, 홀로 있는 시간이 예상 외로 좋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늘 아내와 친구들, 퇴임한 직장 동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이젠 좀 해방되고 싶다는 표현으로 들렸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못 견디는 친구들이 많아 걱정이라며 나이가 들수록 주체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걸 최근 깨닫게 됐다고 했다. 또 남에게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을 개설했다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람들의 글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폐쇄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그의 말은 잔잔했지만, 내겐 깊이 있게 다가왔다. 난 여태껏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삶의 목적이 불분명한 상태로 하루하루 시간을 축내며 살아왔다. 여행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아도 호기심과 경외감 하나만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국내외 여행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사를 쓰는 일도 매일 써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명감보다는 숙제처럼 치르는 일이 돼버렸다. 집에서 음식을 차리는 일도 피동적으로 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남과 대화거리를 만들려면 봐줘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봤다. 한동안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차 읽기 싫은 사회과학 책을 억지로 읽어내기도 했다. 온전히 나만의 행복을 만끽할 삶을 찾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30~40대엔 워커홀릭이 되기 싫은데도 일에 파묻혀 나의 자유를 스스로 압박했고, 휴가를 모두 쓰며 일한다는 것을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던 시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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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금만 나를 내려놓으면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비롯된 억압이었음을 직시하게 된다. 이런 허세와 체면들이 지겨워지고 역겨워진다는 건 나이가 들어 시선이 달라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탁월한 시선의 사유>에서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행동하며, 행동하는 만큼 살 수 있다"면서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고 강조했다.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내가 이끌어가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2019년은 오로지 그런 삶이 충만한 황금돼지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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