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줄 없이 작업하던 노동자 12m 높이 구조물서 추락 사망
사고 이후 안전관리 소홀 여전...업체, 근로계약서 위조 혐의도

안전벨트 고리를 연결할 줄이 없는 건설현장 높은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다. 유족은 사고 당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었다며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한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ㄱ(58) 씨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2.85m 높이 H빔 구조물에서 작업하던 ㄱ 씨는 앉아서 이동하던 중 떨어지려고 하자 구조물에 매달렸다. H빔에 매달린 모습을 본 동료가 다가가 ㄱ 씨 안전벨트를 잡았지만 힘이 빠져 놓쳐버렸다.

▲ 지난달 5일 발생한 추락사고 다음날 오전 건설공사 현장. ㄱ 씨는 H빔에서 작업하던 중 떨어져 숨졌다.

ㄱ 씨는 안전모·안전벨트를 착용했음에도 안전벨트 고리는 걸지 못한 상황이었다. 고리를 연결할 생명줄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락방지망 또한 없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ㄱ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숨을 거뒀다.

고인의 아들 ㄴ 씨는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 없었다. 원청업체와 아버지가 소속돼 있던 하청에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실행했다면 화가 누그러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ㄴ 씨는 "사고 난 다음날 현장에 가보니 출근한 인부들이 사고 지점에서 담배를 피우고 정리정돈을 했다. 현장을 보존하려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장례 치른 후 가보니 생명줄이 설치돼 있었음에도 인부들이 안전벨트 고리를 걸지 않은 채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하청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0월 1일 공사가 시작됐는데 사고 날 때까지 안전장치가 없었던 것도 문제고 사고 이후에도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사고 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하고 느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23조(안전조치) 3항은 '사업주는 작업 중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 토사·구축물 등이 붕괴할 우려가 있는 장소,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아올 위험이 있는 장소, 그 밖에 작업 시 천재지변으로 인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장소에는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42조(추락의 방지)에 따라 작업발판을 설치하거나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한다. 이마저 어렵다면 노동자에게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하는 등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어겨 사망 사고가 나면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하청 소속이었던 고인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5일간 작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는 사고 발생 후에야 고인의 근로계약서와 작업일지를 챙겼다. 이 과정에서 동료 등에게 고인의 인적사항을 물어 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파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달 5일 발생한 추락사고 다음날 오전 건설공사 현장. ㄱ 씨는 H빔에서 작업하던 중 떨어져 숨졌다. 사진은 현장에 널브러진 ㄱ 씨의 안전화.

ㄴ 씨는 최근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에 고발했다. 창원고용노동지청은 중대재해 건과 고발 건으로 나눠 조사 중이다. 창원지청은 원·하청 모두 사고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으며, 1월에 사건을 창원지방검찰청에 송치할 계획이다.

ㄴ 씨는 근로계약서 허위 작성과 관련해서도 사문서 위조 혐의로 마산중부경찰서에 고발했다. 업체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은 "원·하청이 과실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시공사 현장소장은 "창원고용노동지청·경찰에서 조사받고 있는 중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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