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성산산성 습지가 간직한 선대의 흔적
1500년 된 신라시대 고대 목간…700년 만에 꽃 피운 아라홍련
성 꼭대기서 열린 즉석 백일장…4행시·소감문 감상평 쏟아내

2018년의 마지막 탐방은 12월 15일 경상사대부고 학생들의 함안 나들이였다. 함안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매력이 넘치는 고장이다. 아라가야 또는 그 이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서 반짝이는 곳이다. 물어보았더니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서서 함안으로 가자고 정했다는데 그 안목이 대단하다. 이날은 무기연당~성산산성~무진정·충노대갑지비~말이산고분군둘레길~함안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성산산성의 목간과 연씨

조선 시대 전통 정원 무기연당을 먼저 돌아보고 두 번째 찾은 데가 성산산성이다. 알려진대로 신라시대에 쌓은 석성이다.

움푹 꺼진 한가운데에 물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습지가 있다. 습지는 후대에게 두 가지를 남겨주었다. 하나는 엄청나게 많은 1500년 전 고대 목간(글이 쓰인 나뭇조각)이다. 습지에서 스며드는 물기가 산성을 허물지 못하도록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둘레 바닥에 잔뜩 집어넣었다. 흙은 물을 만나면 물러지지만 이것들은 오히려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쓰고 버린 목간들이 섞여 있었다. 옛날에는 그게 쓰레기였지만 지금은 신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연씨다. 습지 아래 깊숙한 데에서 700년 그 긴 세월을 죽지도 썩지도 않고 견뎌내었다. 하기야 땅 속에서 2000년을 기다린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대를 올리고 잎을 틔우더니 결국에는 연꽃까지 빼어물었다. 현대인들 입맛에 맞추는 개량을 당하지 않은 고려시대 모습 그대로였다. 같은 붉은 빛이라도 요염하지 않았고 우쭐거리며 자기만 봐달라고 하는 기색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 수수한 연꽃을 두고 '아라홍련'이라 이름 붙였다.

◇산정에서 펼쳐진 백일장

10분 남짓 걸어올라 동문에서 일대 지형과 현장을 살펴본 다음 왼쪽 건물터로 짐작되는 자리로 옮겨갔다. 주춧돌로 쓰였을 바위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는데 여기서 저마다 소감을 적어보도록 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작품이 쏟아졌다. 다들 상상력과 감수성이 빼어난 덕분이다.

▲ 경상사대부고 학생들이 성산산성 꼭대기에서 소감을 적고 있다. /김훤주 기자

'성산산성 4행시'에는 역사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회가 담겨 있었다. "성스러운 선조들의 처소/산 속 깊은 곳/ 산의 정기가 가득한 곳/ 성 속에 역사가 물들다." "성산산성에 서서/ 산등치 바라보니/ 산 자들의 애환이/ 성벽에 부딪혀 넘어오지 못하는 듯하다." 사람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자취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저절로 아득해지는 그런 경험이다. 역사문화탐방을 통해 스스로 성장을 느끼는 보람도 적혀 있었다. "산을 오르며/ 터질 것 같은 나의 종아리를/ 살랑이는 억새가 보듬어 주는구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산성의 밑부분이 되듯이/ 나의 경험도 점점 단단해지는구나."

듣고 보고 익힌 역사적 사실과 본인의 감정을 잘 버무린 글도 적지 않았다. "겨울 중 햇빛을 받으며/ 옛 성터로 향하네// 오름길은 미끄럽고 가파르다고/ 누런 산이 말하네// 언덕에 봉긋 솟은 성벽은/ 환한 연을 지켰고// 돌무리를 지키는 성벽은 작은 나뭇잎이 지켰다네." "옷을 벗은 산으로 올라오니/ 하늘로 솟은 미루나무가 반긴다/ 힘겹게 올라온 산성터/ 올라와 성벽 지은 사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 그들의 명성이 미루나무처럼 치솟는다."

◇무기연당과 무진정을 견주면

성산산성 내려오는 길 끝에는 무진정이 달려 있다. 이날 처음 살펴본 무기연당은 정원이고 무진정은 자연을 품은 말 그대로 정자다. 무기연당은 자기 사는 집 앞에 연못을 꾸며 놓고 누리는 형국이라면 무진정은 주변을 휘감아 흐르는 하천 물줄기로 조성한 연못을 언덕에 올라 눈에 담는 품새라 할 수 있다.

느낌을 말하자면 무기연당은 단정하게 안으로 모이는 듯하고 무진정은 활기차게 밖으로 뻗어나가는 기색이다. 또 무기연당은 인공 한가운데 조그맣게 구현한 자연이고 무진정은 넓게 트인 자연을 잘라내어 감싸안은 인공이다.

▲ 무진정 연못을 거니는 경상사대부고 학생들. /김훤주 기자

부자쌍절각과 충노대갑지비는 무진정 한쪽 귀퉁이에 있다. 아버지는 왜란을 맞아 조상을 위하여 목숨을 버렸고 아들은 호란을 당해 임금을 위하여 싸우다 목숨을 잃어서 부자쌍절이 되었다. 옆에 놓인 노비 이야기는 한결 구슬프다.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자 모시던 노비는 천리 먼 길을 돌아와 집안에 부고를 아뢰고는 물가 낭떠러지에 올라 스스로 몸을 던졌다. 주인을 살리지도 못했고 시신을 찾아 모시지도 못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이유였다. 빗돌을 세운 까닭은 단지 이를 기리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도 거기에 깔려 있을까.

◇말이산고분군과 함안박물관

말이산고분군은 두말이 필요없는 함안의 보물이고 명승이다. 바라보는 고분군도 좋지만 걸어보는 고분군도 그럴듯하다. 조금 욕심을 내어 통째로 걷기로 했다.

먼저 도동마을 언저리 암각화고분을 살펴보고 거기서 함안박물관까지 거꾸로 걸음을 옮겼다. 암각화-바위에 새긴 알구멍과 동심원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풍요와 생산을 기원한 자취라 한다. 이게 그려진 바위가 철기시대인 아라가야의 무덤 덮개로 쓰였다. 세상 보기 드문 모양새다.

▲ 말이산고분군 사이로 걸어가는 경상사대부고 학생들. /김훤주 기자

1km 남짓 고분군 둘레길을 거쳐 함안박물관에 이르렀다. 잘 갖춰진 이 박물관에서는 두 개만 새기면 된다. 하나는 불꽃무늬토기이고 다른 하나는 말갑옷이다. 아라가야의 옛 고장 함안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고유한 유물이다. 여기에 더한다면 등잔 달린 토기 등 갖은 이상한 토기와 400년 전 함안을 기록한 <함주지>를 꼽을 수 있다.

▲ 함안박물관에서 전시된 유물을 보며 자세히 그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 /김훤주 기자

학생들은 둘씩 팀을 이루어 미션지를 들고 들어갔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은 답을 손쉽게 찾았다. 나중에 모여 문제 풀이를 했더니 다 맞힌 친구가 10명이 넘었다. 이런 경우는 여태 한 번도 없었다. 성산산성 백일장에서도 상품권을 선물로 주었는데 이번에 또 나누려니 어쩔 수 없이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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