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기상과 닮아 예로부터 인기 채소
하동군 지원 덕 지역 농가소득창출 기여

조선시대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를 오가면서 놀랍고 신기해한 것이 있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마당 어귀에 어김없이 파릇파릇한 것을 키우는데 자세히 보니 미나리였다. 미나리야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채소이니 따로 신기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하고많은 채소 중에 하필 미나리를 그것도 집집이 재배를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신 중 참을성 모자란 이가 있었는지 우리나라 벼슬아치에게 물었는데 답 왈, 미나리는 집집마다 있는 수채에서도 잘 자라고 베어 먹어도 심을 필요 없이 또 자라는 데다 엄동설한에도 죽지 않고 있다가 봄이 오기 무섭게 부드럽고 향긋한 싹을 틔워내니 이보다 더 취하기 쉬운 채소가 따로 없으며 게다가 몸에 이롭기 그지없으니 나라에서 권하지 않아도 모든 집에서 심어 먹는다고 했다.

미나리는 이처럼 우리 겨레의 식생활에 오래도록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채소이다. 조선조는 특히 선비의 기상을 숭상하여 이 선비의 기상과 미나리가 닮았다 하여 이를 먹어 선비의 기상을 높이려고도 하였다 한다. 미나리는 선비와 닮은 것이 첫째가 더러운 곳에서 자라지만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더러운 것을 정화하면서 파랗고 싱싱하게 자라는 것이며, 둘째가 햇살이 들지 않는 음지에서도 굳세게 자라는 꿋꿋함이며, 셋째는 가뭄에도 죽지 않고 견뎌내는 강인함이다. 그래서 종묘제례에도 미나리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선비의 기상 운운한들 맛이 없으면 산천에 그저 흔한 풀의 신세를 면할 수는 없다. 미나리는 건강에도 이롭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았던 것이다. 미나리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질 등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이다. 혈액을 맑게 하고 대소변 소통은 물론이고 술 좋아하는 이들에게 반가울 간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있다고 한다. 얼큰한 매운탕에 미나리가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다.

다행으로 이렇게 선비의 기상을 닮은 데다 사람에게 지극히 이로운 미나리를 고향이며 생업을 이루고 사는 하동군 횡천에서 심기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다. 처음 지리산청학농협에서 미나리로 이름 높은 청도 한재 미나리를 구해와 농가 소득작물로 권장한다고 했을 때 아둔한 소치로 시큰둥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목반이 꾸려져 이들이 똘똘 뭉쳐 축제를 열고 고장의 자부심 있는 작물로 가꾸어 내는 것을 보고는 몸이 달아 올봄 기어이 미나리 농사를 시작했다. 하우스를 짓고 모종을 내고 마침내 11월 말 가을미나리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렸다. 수확한 미나리는 전량 지리산청학농협에서 판매를 해주니 파는 걱정 없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며 고생한 이웃 아주머니들과 미나리전을 나누며 그 향기에 듬뿍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하였다.

오늘날 농업은 시름겨운 농민의 찌푸린 삶과 같다. 이런 현실을 극복해 내는 길은 미나리 농사처럼 새로운 활력을 찾는 것이다. 지리산청학미나리는 지역 농협의 농가소득창출을 위한 노력과 이를 가능하게 한 윤상기 하동군수의 착상과 지원에 덕을 입은 바가 크다. 새삼 리더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만 많은 정치인들이 꼭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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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이제 막 월동을 하고 물을 대기 시작한 미나리가 선비의 덕목처럼 내 고장과 지역사회에 큰 향기를 낼 것이다. 농사는 하늘이 낸다고 한다. 더불어 사람 사는 이치 또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큰소리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이들에게도 미나리 향기가 더해진다면 내 작은 소득에 비할 바가 아닌 성싶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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