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무기력·무례가 주는 상처 커져
교육현실 개선과 함께 '치유' 이뤄져야

"그래도 선생님은 정년이 보장되잖아요?" "일 년에 한두 번씩 방학 있는 직장이 어디 있어요?" "요즘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데 복에 겨운 소리 하고 있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 만날 때마다 많이 듣는 소리입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습니다. 교사만큼 안정된 직장은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날들이 참 많은 직장이긴 합니다. 학교와 교사는 파란 새싹 돋아나는 봄이 오면 새로운 아이들 맞이하며 마음 설렙니다. 꽃길 따라 소풍도 갑니다. 수학여행도 갑니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만큼 아름다운 날들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진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쟁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왜일까요?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 게임하고 잠만 자려는 아이들이 늘어납니다. 아이들의 무례한 행동은 더욱 강도를 더해갑니다. 백 번을 이야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당하고 합리적인 말이었는데 막무가내로 어기는 학생들도 종종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친구 괴롭히며 욕하는 아이에게 잘못된 말과 행동이라며 타이르는데 되돌아오는 것은 짜증과 '개무시'뿐입니다. 잠자는 아이 깨워서 수업 시간에 왜 잠을 자야 하는지 물어보면 '그냥요'라고만 대답합니다. 짜증 섞인 욕설 반응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심지어 수행평가 시간인데도 그냥 자는 아이가 있습니다.

동료 교사가 귀띔해 준 상황은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음악 시간이었습니다. 신나는 가요를 틀어주며 감상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중 몇몇 아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쉬는 시간부터 계속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음량 높여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담당 교과 선생님은 0점 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수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왜 0점 처리했냐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황당할 노릇입니다.

고등학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심한 욕설이 튀어나오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다소 위험한 발언들이 난무하기도 합니다. 교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교탁에 있는 컴퓨터 위 유리에 앉아 있다 유리가 박살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교실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기도 하고, 격투기 삼매경에 빠지는 아이들도 종종 있습니다. 아무래도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경우는 수업 시간이 시작되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니거나 떠들고만 있는 아이들 바라볼 때입니다. 그런 교실 바닥은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아이들이기 때문에 장난도 치고, 가끔 무례한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기대도 해봅니다. 문제는 교사들 상처가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보이는 무기력과 의욕 없음을 닮아가며 상처가 곪습니다. 그럴 때마다 배움과 가르침에 회의가 들게 됩니다. '교사들이 부서져 갑니다'. 해가 갈수록 고단한 교사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 없어 결국에는 '탈진증후군'에 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방치'했다며 적폐 대상으로 몰리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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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픈 세상이 교사에게 주는 피할 수 없는 상처일지도 모른다며 교직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하루빨리 상처받는 교사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교사 개인의 회복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배움과 나눔, 돌봄의 학교 공동체. '행복학교', '혁신학교' 처방만으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한 교육 현실과 환경을 바꾸기 위한 수많은 시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 상처'를 치유할 방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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