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 아닌 산꼭대기에 읍성이?
샘물 있고 평평한 하동읍성
주교천 덕에 섬진강과 연결
쌍계사 수수한 매력 '흠뻑'
최참판댁서 〈토지〉 상상
전통 한옥 구조 배우기도

올해 우리 고장 역사 문화 탐방에서 하동은 밀양동명고(5월 21일) 창녕 대성고(5월 27일) 통영중앙중(5월 30일) 진주 대아고(11월 3일) 네 학교가 찾았다. 최참판댁과 쌍계사를 공통으로 탐방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경우에는 화개장터나 하동읍성을 더하는 식으로 했다.

◇소박한 쌍계사

쌍계사는 전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길을 10분 남짓 오르면 본전이 나타난다. 대웅전·팔영루 등 전각들이 웅장하고 구층석탑이 높은 데다 계단도 가파르다. 그런데도 위압적이지 않다. 오히려 수수하고 소박하게 느껴지지 이질감이나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내는 미션은 간단하다. 몇 가지를 사진에 담으면 된다. 진감선사대공탑비와 그 설명, 목어, 마애불과 꽃담장 정도다. 인상 깊고 특징적인 모습을 찾아 자세하게 그리기도 해보고 둘러보면서 궁금한 것을 찾아 질문도 만들어오는 것이다.

▲ 통영중앙중학교 학생들이 쌍계사 너른 마당에 흩어져 자세히 그리기를 하고 있다. /김훤주 기자

진감선사대공탑비는 쌍계사가 들어서게 된 내력을 담고 있다. 불교음악인 범패가 여기서 시작되었다거나 원래 이름이 옥천사였다거나 하는 세세한 내용은 몰라도 된다. 신라 말기 슈퍼스타 최치원 선생이 손수 지은 비문이 1000년 넘게 세월이 흘렀음에도 보기 드물게 그대로 살아남은 국보라는 정도만 알면 된다. 목어는 운판·범종·법고와 함께 범종루에 모여 있다. 모두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물건이다. 구름 모양 운판은 구름처럼 허공을 떠도는 만물, 쇠로 만든 범종은 쇠처럼 땅 속에 있는 만물, 소가죽으로 만든 법고는 소처럼 가죽을 걸친 만물, 물고기 모양 목어는 물 속에 있는 만물을 깨우치는 구실을 한다.

대웅전 오른편에는 마애불이 있고 왼편 담벼락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바위를 갈아낸 가운데 돋을새김을 한 마애불은 영판 어린아이 모습이다. 볼은 탱글탱글하고 입은 웃는 모습이라 순박한 느낌이 든다. 또 담벼락 꽃무늬는 깨진 기와를 바깥쪽에 꽃잎 모양으로 두르고 가운데에 흰색 사발 조각을 꽂아넣어 꽃술처럼 보이게 했다. 쌍계사가 웅장한데도 수수하고 소박하게 여겨지는 까닭들이다.

◇대웅전과 어긋나 있는 대공탑비

자세히 그리기 품평을 끝내고는 묻고 답하기를 한다. 건물을 하나라도 눈여겨보고 쌍계사에 스며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하나라도 살펴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올해 쌍계사 으뜸 질문은 대아고에서 나왔다. "진감선사대공탑비가 대웅전과 똑바로 마주보지 않고 비스듬하게 돌아앉았는데 까닭이 뭐예요?" 불교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절간에 있는 이런저런 전각과 석탑이나 비석은 그냥 보면 되는대로 놓여 있는 것 같지만 다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진감선사대공탑비가 대웅전과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 있는 까닭은 탑비가 세워질 당시에는 지금 대웅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때 중심 전각은 왼편 아래쪽 산기슭에 있었다.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그러니까 지금 대웅전과는 당연히 무관하다. 대신 탑비를 세우면서 일직선으로 놓았던 축은 당시 중심 전각에 맞추었기에 뒤에 들어선 대웅전과 맞지 않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사실이지만 심상하게 여기고 태반이 그냥 넘어가는 사안을 이상하다고 여기며 잡아내는 안목이 놀라웠던 것이다.

◇소설 <토지>가 만든 최참판댁

최참판댁은 악양면 평사리에 있다. 평사리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서 주무대로 나온다. 대부분 사람들은 최참판댁이 원래 있었고 소설은 나중에 지어졌다고 여긴다. 하지만 <토지>가 유명해져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하는 일이 잦아지자 하동군청에서 드라마 세트장으로 지어 앉힌 것이 최참판댁과 소작인들의 집이다. 정작 박경리 선생은 작품 집필 당시 평사리를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다.

최참판댁은 아주 잘 지어졌다. 안채·사랑채·별채·행랑채·별당채·초당 등이 소설에 나오는 그대로다. 또 원칙에 충실하게 지은 전통 한옥이어서 학생들과 옛날 가옥을 공부하기 좋다. 여기서 주어지는 미션은 소설 <토지>의 얼개를 따라가는 부분과 한옥 구조를 알아보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여자가 사는 안채와 남자가 사는 사랑채의 차이점을 찾아보게 하고 여자주인공 서희의 아버지 최참판이 최후를 맞는 초당에서 인증샷 찍기 등이다.

사랑채 누마루에 모여 미션 문제 풀이를 하면서 소설 <토지>의 줄거리와 주제 등을 더불어 일러준다. 소설 속 장소들을 스스로 찾아본 다음이라 들려주는 얘기가 귀에 쏙쏙 꽂힌다. 전통 기와 사대부집에서 안채는 기둥이 네모나고 부엌이 있는 반면 사랑채는 기둥이 둥글고 부엌이 없다는 차이점도 일러준다. 네모와 원은 여자와 남자를 뜻하고 옛날 남자들은 여자들이 장만해 주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라 덧붙인다.

◇소설 <역마>와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소설 <역마>의 배경이다. 김동리는 1940년대 사천에 머물던 시절 하동 악양 일대에 들러 작품 창작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과 쌍계사, 화개장터와 화개천의 경관에 마음을 빼앗기고 여기 사람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인 덕분이다. 우리 학생들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잘 담아두면 나중에 어쩌면 웹툰이나 게임에서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장터 한편에는 소설 <역마> 조형물도 있다.

▲ 화개장터에서 소설 <역마>의 조형물을 살펴보는 창녕대성고 학생들. /김훤주 기자

화개장터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자리다. 남해 바다와 내륙 지리산도 들판과 강물도 여기서 겹쳐진다. 산에서 나는 버섯과 약초가 와서 배를 타고 내려가고 바다에서 나는 생선과 소금이 와서 지게에 올라앉아 산으로 들어간다. 화개장이 옛날부터 대단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도 화개장터는 5일장이 아니라 상설장이 될 정도로 붐비지만 옛날 행색은 없다.

◇산꼭대기 하동읍성

하동읍성은 평지에 있는 다른 읍성과 달리 산꼭대기에 있다. 낮은 산이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데다 바로 앞에 강물을 타고 배가 들어올 수 있어서다. 그러나 섬진강 본류가 아니고 본류에서 직선거리로 6㎞가량 떨어진 산골에 있다. 읍성으로 물길을 이어주는 하천은 지류인 주교천이다. 남해 바다를 오가고 섬진강을 오르내리는 움직임이 한눈에 담기는 요충지였다.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 장군이 머문 장소이기도 하다.

▲ 하동읍성에 올라 성곽을 둘러보는 진주 대아고 학생들. /김훤주 기자

산꼭대기에 하동읍성을 둘 수 있었던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샘솟는 물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너르고 평평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모여 살 수 있는 기본 조건은 갖추었던 것이다. 옛 성의 실제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하여 가까운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군데군데 멈추어서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 얘기를 곁들였다. 한 바퀴 다 돌 필요는 없으니까 중간쯤에서 분질러 한가운데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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