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설비 조금씩 개선되지만 여전한 시민 안전불감증
다중이용시설, 화재 확산 막는 방화문 활짝 열려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100%…중소병원 지지부진
경남도, 필로티 건축물 안전점검 내년에야 시행

화재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올해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62명 사망, 130명 부상 등 사상자가 192명이나 발생했습니다. 김해에서는 지난 10월 원룸에서 불이 나 어린이 2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습니다. 모두 제도적 허점이 피해를 키웠습니다. 이후 안전을 위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요?

▲ 지난 1월 192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 /경남도민일보 DB

밀양 세종병원과 김해 원룸 화재 사고로 각종 제도가 강화되고, 안전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닫히지 않는 방화문 등 기본적이지만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시민인식 개선도 필요한 상황이다.

◇여전히 열린 방화문 = 지난 1월 26일 오전 7시 32분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피해가 컸던 요인 중 하나는 1층 방화문을 아예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방화문에 대한 시민의식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병원에 방화문이 없어 유독가스가 위층으로 번지는 데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봤다. 세종병원 참사 사망자 대부분이 유독가스 질식사였다. 방화문은 화재 확대와 연소를 방지하도록 출입구 등에 설치하는 '생명문'이다.

세종병원 참사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방화문이 열려 있는 다중이용시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0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학원·치과·성형외과·독서실 등이 밀집한 빌딩 5곳만 둘러봐도 방화문이 모두 닫힌 곳은 없었다.

▲ 지난 20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고층빌딩에 열려 있는 방화문. 방화문에는 '이 문은 항상 닫힌 채 유지돼야 한다'는 소방당국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김희곤 기자

창원소방본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소방시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제도적 기준과 성능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설을 갖춰도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방화문을 닫아 놓는 것은 기초적이지만 아주 중요하다. 시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화문이 열려 있으면 신고해 포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경남에서는 2010년부터 조례에 따라 방화문 등 소방시설 불법행위 신고포상제가 운영되고 있다. 심사를 거쳐 현금이나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으로 5만 원을 지급한다. 신고는 관할 소방서에 하면 된다. 한도는 월 30만 원, 연 300만 원이다.

그러나 경남도·창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신고도 줄고, 포상금 지급건수도 2012년 254건에서 2013년 49건, 2014년 29건, 2015년 42건, 2016년 36건, 2017년 5건, 2018년 4건으로 점점 줄었다.

◇"도내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100%" = 세종병원 화재에서 또 안타까운 점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세종병원에서는 화재 초기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점이 피해를 키웠다.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설치는 2014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사망하면서 의무화됐다. 올해 6월까지 설치해야 했다.

경남도에 따르면 도내 요양병원 120곳에 100% 스프링클러 설치가 끝났다. 경남도 관계자는 "입원 환자가 있는 요양병원은 100% 설치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뿐만 아니라 중소병원까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6월 30병상 이상 병의원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안전대진단 점검결과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1066곳이다.

복지부는 수천만 원이 필요한 리모델링 수준인 스프링클러 공사가 부담스럽다는 병의원 측 의견에 따라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필로티·드라이비트 종합 점검 = 지난 10월 20일 오후 7시 45분 발생한 김해 원룸 사고 때 화마를 키운 필로티 구조와 드라이비트 공법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김해시 서상동 4층짜리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가 순식간에 번지면서 2층에 있던 아동 2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불이 난 건물은 지난해 충북 제천 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와 마찬가지로 화재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에 드라이비트 공법이 사용된 건물이어서 '판박이 사고'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필로티 구조는 1층을 통해 산소가 공급되다 보니 불이 확산하기 쉽고, 위층으로 옮겨붙기도 쉬운 문제가 있다. 드라이비트 공법은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과 시멘트를 사용해 마감재를 붙이면서 건축비를 아끼면서도 단열 효과가 높지만, 불에 잘 타는 소재여서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남도는 지난해 국토교통부 요청에 따라 필로티 구조물 현황에 대한 1차 조사를 했지만, 김해 원룸 건물처럼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은 포함하지 않았다. 게다가 드라이비트 마감재와 관련된 현황 조사도 없었다. 이는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63만여 개에 이르는 전체 건축물을 대상으로 드라이비트 공법 여부 등을 전수조사한 것과 대조됐다.

경남도는 지난 19일 필로티 건축물 종합 화재안전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도는 소방·건축·전기 합동점검반을 편성해 단독주택·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을 포함한 필로티 건축물 1만 1016곳을 대상으로 내년 1월부터 7월까지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할 계획이다. 점검 대상은 건축물 내·외장재, 필로티 불법 증축·용도변경, 필로티 주차장 전기시설 등 13개 분야 48개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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