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대 어울린 담쟁이 인문학교
삶의 온도 높이는 공간 자리매김

우리 마을에는 4년째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담쟁이 인문학교'가 있다. 청소년부터 60대 어른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배움터다. '그렇게 다양한 세대가 모여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담쟁이 인문학교에 와 보지 않은 분들은 머릿속에 풍경이 잘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살아가면서 할 수밖에 없는, 또 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다. 삶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지고, 각 세대가 가지는 생각을 한 자리에서 나누는 곳이 담쟁이 인문학교라 생각하면 된다.

지난 11월에는 '스마트폰'에 대한 토론을 했다. 부모님들과 청년들, 그리고 초등학생 아이들. 모두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 해도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가까운 사이인 만큼 거리를 두고 생각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럴 때 담쟁이 인문학교에 모여서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 생각을 함께 들어보고, 우리 부모님 마음과 다른 부모님 마음도 함께 들여다본다. 살아온 환경과 시대에 따라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조금씩 벽을 허물어간다.

12월 15일에는 '청춘 콘서트 모랑모락'이 열렸다. 가까운 지역에 사는 청년들을 초대해서 무대를 꾸몄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었다. 자기 이야기로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인 노래도 불렀다. 이름 있는 가수는 아니지만 각자 삶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청년들이다. 그 노래에 귀 기울이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어 참 좋았다.2018년 끝자락에 담쟁이 인문학교를 일구는 사람들이 모여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모임을 했다. 담쟁이 운영위원은 합천군 가회면 마을에 사는 농부님들이다. 하루 동안 날을 잡아 점심, 저녁밥을 나누어 먹으며 한 해 계획을 짰다. 12월 담쟁이 인문학교에 오신 분들에게 '2019년에 바라는 주제'에 대한 설문을 돌렸다. 담쟁이 인문학교가 함께 만들어가는 배움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어떻게 인문학교를 이끌어갈지 방향을 잡아갈 때 답변을 받은 게 도움이 된다.

2019년에 정한 주제는 크게 '교육, 환경, 역사, 문화, 심리, 놀이'로 나눌 수 있겠다. 1월에는 <문 닫는 아이, 간섭과 관심 사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디까지를 관심이라 여기고, 무엇을 넘으면 간섭이라 생각할까? 부모님들은 닫힌 아이 방문이 왜 그렇게 외롭게 느껴지고, 불편한 걸까? '닫힌 문'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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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말고도 여러 주제를 정했다. 환경문제인 플라스틱에 관한 이야기, 우리 지역 역사 이야기, 우리가 쓰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에 관한 이야기, 추억이 담긴 노래를 서로에게 소개하는 시간, 밤 숲에 별을 보러 가는 시간,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공부하는 시간, 그리고 내년 12월에는 올해처럼 청년들을 초대해 작은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어떤 학력이 생기는 학교는 아니지만, 살면서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하는 소중한 학교이다. 내 삶의 온도를 조금 더 따뜻하게 올려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작은 배움터가 마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듬직한 나무로 설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나무 그늘에 고단한 삶에 지친 작은 존재들이 쉬어갈 수 있다면 그만큼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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