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발의 이어졌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어
"제대로 처벌·관리했다면
산업재해 사망 막았을 것"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 사망으로 산재사고 예방을 강화하고자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요구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에 대한 처벌 규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사용자(기업)가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나면, 형법은 개인이 아닌 기업에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산안법은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에 비교적 경미한 벌금형만 부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사고로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중대재해 사고에서도 원청 대표는 형사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기업살인처벌법은 외국에서 선례가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서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 7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2008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자에 대해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통상 연간 매출액의 2.5~10% 범위에서 산업재해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상한선이 없는 징벌적 벌금을 부과해 산재를 예방하고자 한다.

▲ 민중당 경남도당이 20일 창원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2008년 영국에서 27세 한 지질학자가 3.8m 아래 구덩이에서 지반 침하로 질식사한 사고가 첫 적용 대상이 됐다. 영국 법원은 1.2m 이상 구덩이에는 말뚝이나 지지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지키지 않은 점, 굴속 작업 시 외부 감시자가 없었던 점 등에 따라 해당 기업에 38만 5000파운드 벌금을 선고했다. 이는 해당 기업 연매출액 2.5배 수준이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영국은 기업살인처벌법 이후 노동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사망만인율)가 2007년 0.7명에서 2009년 0.4명으로 42.8%p 감소했다. 2003년 '산업살인법'을 만든 호주도 2.3명(2003년)에서 1.9명(2009년)으로 17.3%p 줄었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매년 2000명에 가깝다. 올해 1~9월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노동자 1879만 명 중 1588명이 숨졌고, 7만 4529명이 다쳤다.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요구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12월 발의했으나 폐기된 바 있다. 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이후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기업처벌법 도입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또 2016년 11월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 지난해 4월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살인처벌법을 발의한 바 있다.

손석형 민중당 4·3 창원성산 보궐선거 예비후보는 20일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살인처벌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 예비후보는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산재사고 등 기업살인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김종훈 의원도 "제대로 처벌하고 제대로 관리만 했더라도 김용균 노동자와 같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산재 예방을 강화하고자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개정안은 산업재해 보호대상 확대와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산재사망 기업의 형사처벌 하한 규정이 없어 솜방망이 처벌만 이어질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경영계는 기존 7년에서 10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 규정 상향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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