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연극, 지역민과 함께
경남 영화, 세계인 앞으로
미투 이후 더 주민 가까이…지역잔치 된 연극제 '흐뭇'…극단·소극장 재정난 여전
<오장군…><나부야…>등 국제영화제 잇따라 초청…다양한 지역영화제 눈길

올해 2월 연극계에서 터져 나온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고질적인 위계질서에 반성, 변화라는 큰 화두를 던졌다. 미투(#me too)는 SNS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성폭력 고발, 척결을 중심으로 하는 공감 움직임이다. 사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더욱 빛나던 시기였다. 밤마다 제보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이후 도내 문화·예술계에 변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대체로 이렇다. 더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가능하면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면 좋겠다는 거다. 경남연극협회는 미투 운동 관련해 두 번이나 공식 사과를 하고, 자체 성폭력 방지 교육을 진행했다. 성폭력 피해 설문조사도 진행했지만, 구체적인 결과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물론 유독 연극계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혹시나 일부 문화·예술인들이 미투 운동에 공감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이해했으면 한다. 굳이 성희롱이나 성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권위나 위계를 중시하는 습관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도내 연극계 명과 암 = 올 한 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도내 연극제보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어우러져 열리는 연극제가 더욱 풍성했던 것 같다. 거창한 것을 추구하기보다 소소한 것에 주목하는 시대 흐름에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에 열린 경남연극제는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투 운동 여파로 걱정이 많았지만 개막 전부터 출품작 중 절반 이상이 매진되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야말로 경남 연극 잔치 같았다.

▲ 경남연극제 대상작인 거제 극단 예도 <나르는 원더우먼>. /경남연극협회

경남연극제에서 관객 호응이 가장 컸던 거제 극단 예도의 <나르는 원더우먼>(이선경 작, 이삼우 연출)이 대상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6월 15일~7월 2일 대전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도 금상을 차지했다. 경남연극제에서 신인연기상을 받은 김해 극단 이루마 한재호 배우를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다.

지난 7월 열린 통영연극예술축제도 흐뭇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올해로 10년째에 접어드는데, 통영 대표 극단 벅수골이 2005년 시작한 '통영 전국소극장축제'로 시작해 꾸준하게 성장하며 이제는 윤이상국제음악제, 통영한산대첩축제와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뭔가 대단한 게 있었다기보다는 극단 벅수골의 연륜과 시민들의 신뢰가 만난 우리 동네 생활 축제 같은 것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8월에 열린 거창아시아1인극제도 올해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거창군 고제면 삼봉산문화예술학교라는 산골 마을 폐교를 고친 곳에서 11년째 진행된 행사다. 주변 마을 주민들은 물론 거창 읍내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신기하게 붐비던 잔치였다.

▲ 8월 열린 거창아시아1인극제./경남도민일보 DB

거창국제연극제는 올해로 3년째 파행을 겪었다. 관련자 서로 간에 쌓인 불신부터 없애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잡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여전히 전국적인 인지도가 높은 만큼 잘 추슬러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으면 좋겠다.

미투 운동 여파로 운영 주체를 잃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밀양푸른연극제로 이름을 바꿔 진행했는데, 나름 성과를 보였다. 이제는 이전처럼 전국적인 명성에 집착하지 말고 지역 정체성을 꾸준히 살리면서 운영하면 좋겠다.

◇열심히는 하지만, 여전히 힘든 극단들 = 개별 극단 공연에서 올 한 해 명장면을 꼽으라면 지난 7월 24일 산청군 금서면 산청동의보감촌 잔디광장에서 열린 극단 큰들 마당극 <효자전> 200회 공연을 들겠다. 35도의 불볕더위에도 배우들은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넘어지고, 펄쩍 뛰어올랐다. 200번을 똑같이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2010년 5월 8일 첫 공연 이후 9년간 꾸준히 사랑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 2010년 첫 공연 후 올해 7월 200회를 맞은 극단 큰들 마당극 <효자전>./경남도민일보 DB

도내 극단들 모두 올 한 해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공연했다. 하지만, 대부분 극단이 일상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니 경남문예진흥원 등 정부 지원금을 확보하려 열심히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하면서도 소소한 창작 작품을 올릴 소극장이 많아지는 일이다.

상황은 오히려 반대다. 지난 2월 오랫동안 마산 연극판을 지키며 든든한 문화공간 노릇을 하던 창동 가배소극장이 재정난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으며 도내 소극장들의 어려움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문화 다양성을 위한 소극장 확보는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올 한 해 지역 연극계는 지역 연극계 토대를 만든 한 세대를 떠나보냈다. 경남 원로연극인 지운 한하균 선생이 5월 16일 향년 87세로 별세하면서다. 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그는 온재 이광래(1908∼1968), 월초 정진업(1916~1983), 배덕환(1916∼2010), 화인 김수돈(1917~1966)에 이어 경남 연극계 마지막 원로였다.

◇지역 영화의 명과 암 = 올해 개봉한 지역 영화는 두 편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해원>(감독 구자환)이 5월이었고, 지역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독립영화 <오장군의 발톱>(감독 김재한)이 8월이었다.

▲ 지역민이 돈을 모아 만든 독립영화 <오장군의 발톱> 중 한 장면./스틸샷

특히 <오장군의 발톱>은 세계적인 영화제 중 하나인 제40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MIFF)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또, 최정민 감독(창원)이 만든 장편독립영화 <앵커>(2017)와 최정우 감독(창원)이 만든 장편 다큐멘터리 <나부야 나부야>(2018)도 지난 5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하지만, <해원>도 <오장군의 발톱>도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상업영화 위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영화관 특성상 다양성 독창성이 생명인 독립 영화들이 설 자리가 그렇게 마땅찮기 때문이다.

▲ 열악한 예산에도 좋은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받은 진주같은영화제. /진주같은영화제

그나마 제11회 진주같은영화제, 제12회 창원환경영화제, 창원에서 처음 열린 시네마디지털경남2018 등 다양한 영화제가 열려 지역에서 만든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진주같은영화제처럼 민간이 주관하는 행사는 열악한 재정 상황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지역민들이 더욱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문화계 결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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