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창업 겸직 허용…안팎에서 비위 가능성 지적
감사 인력 적고 전문성 부족해 불·탈법 감시에 구멍

한국전기연구원 등 일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자체 감사 기능이 빈약하거나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대책이 요구된다.

감사원은 지난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관 한국전기연구원(KERI·본원 창원)을 특정감사해 소속 연구원 2명에 대해 회사를 차리고서 KERI의 예산과 인력을 빼돌려 손해를 입힌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전 원장에 대해서도 이들 연구원의 행위에 동조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작동하지 않는 감사시스템 = 이와 관련해 한국전기연구원 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10일 전 원장의 재선임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 전 원장이 경영 '전횡'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남도민일보>가 확인한 결과 이 문제와 관련한 한국전기연구원 내부 감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기연구원 측은 작년 10월 14일 전 원장이 퇴임한 이후 올해 4월 16일 최규하 원장이 취임하기까지 6개월간 원장이 없어 내부 감사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임에도 원장이 공석이라는 이유로 내부 감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특히, 이번 문제는 전기연 소속 연구원이 창업 기업 대표이면서도 겸업·휴직 상태로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는 '이중 신분'인 상태에서 벌어진 것인데 이와 관련한 불·탈법 감시도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NST에 따르면, 올해 연구원 창업은 총 18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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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은 지난 11월 한국전기연구원을 특정감사, 소속 연구원 2명에 대해 회사를 차리고서 KERI의 예산과 인력을 빼돌려 손해를 입힌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전 원장에 대해서도 이들 연구원의 행위에 동조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경남도민일보 DB

과기정통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25곳은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기술이전법)'에 근거해 소속 연구원이 출연연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창업자는 창업기업에서 활동하는 동안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에 따라 최대 6년간 휴직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이는 창업자가 기업 운영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연구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전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NST는 '출연(연) 연구원 창업 규정 가이드라인(안)'에서 6년 중 일정 기간 겸직 신분을 유지하도록 규정을 마련했다. NST는 이 권고안에서 출연연이 겸직 기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따로 기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각 출연연은 이에 따라 창업자에게 겸업 신분을 부여한다. 출연연에 따라 일정 겸직 기간 창업자에 최대 100%까지 월급을 지원한다.

◇출연연 연구원 창업지원 제도 감시 허술 = 공공기관 공시 정보에 따르면, 국가보안기술연구소를 제외한 출연연 24곳의 올해 '정부 순 지원' 예산은 총 1조 8462억 원으로 책정됐으며 정규직 직원 1인당 평균 보수액은 약 8300만 원이다.

전기연구원 노조 관계자는 "(창업 기업의) 모태가 전기연구원이라해도 개인회사다. 우리 기관 연구원이 거기서 일했다는 것은 관행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변재일(더불어민주당·충북 청주시 청원구) 의원 측은 이 같은 창업 연구원 겸업 특례에 대해 "창업을 하러 나갔을 때 연구원직을 가지는 것은 그 직함 자체로 사업에서 굉장한 이점을 가진다. 이 제도를 잘 운용하면 상관없겠지만, 문제가 될 소지도 분명히 있다"라며 "창업자는 출연연 소속인 이상 감사의 대상"라고 밝혔다.

상임감사가 있는 곳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4곳이다. 상임감사 평균 연봉은 올해 기준 약 1억 5000만 원이다. 이외 15곳은 비상임감사가 있다. 이들 평균 연봉은 약 2400만 원이다.

변 의원은 "비상임감사는 아무 역할도 못 하고 상임감사 역시 수사나 감사 경력을 지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 세금이 마구 쓰이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NST는 이 같은 '부실 감사'를 개선하고자 NST로 감사를 일원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NST는 지난 9월 14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출연(연) 감사기능 선진화 추진전략(안)' 안건을 의결했다. 이 방안은 출연연 25곳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감사제도를 없애고 2021년부터 NST로 감사를 일원화한다는 것이다.

NST 관계자는 "각 기관에서 자체 감사를 내부적으로 하다보니까 감사에 관한 전문성과 인력이 부족하다"며 "각 기관마다 감사 내부 인력이 담당자 포함 1~2명밖에 없다. 사실상 감사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NST 일원화 시기에 대해 "2021년에서 1년 정도 시기를 앞당기고자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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