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의 도시에 봄은 오는가
1910년 일제가 조선인 거주지로 조성
전통적 미로형 아닌 바둑판형 주거지
재개발 계획과 도시재생 필요성 공존

겨울비 내리는 진해 경화동 골목에 갔다.

특이한 경화동의 바둑판형 주거지는 빗방울에 스며들어 추웠다.

인근 중앙동 중원로터리 일대 일본인 전용 주거지와 함께 조선인들 거주지로 1910년 이후 일제가 조성한 곳이다.

경화초등학교가 출발점이다.

골목은 동서 방향으로 '경화로', 남북으로 '충장로'로 이름붙였다. 골목이라기보다는 소방로에 가까운 넓고 곧은 길이 정말 바둑판같다.

10년 전 경화동 골목 안의 노인들은 싸웠다.

▲ 겨울비가 가랑가랑 내리는 경화로 골목. 굽은 어깨 굽은 허리의 노인이 점점 더 작아져간다. /이일균 기자

◇노인들 시끌했던 곳

전통적 미로형 골목과 다른 바둑판형 주거지 구조에 대해서였다.

"왜놈들이 감시 잘 할라꼬 만든 거 아이가. 안 그라먼 와 조선사람들만 여 모았겄노."

"무슨 택도 없는 소리고? 100년 전 만든 골목 너비가 지금 소방도로 만하다 아이가. 광장도 있고. 그만큼 도시계획을 잘 했다는 기라!"

얼마 전 마산YMCA가 마련한 '지역학 아카데미' 첫 시간에 허정도 한국토지주택공사 상임감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해는 일제에 의해 완전히 새로 건설된 식민지도시였어요.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해군기지였지요. 당시 인구분포가 26:74로 일본인들이 더 많았어요."

"그들은 주거구역도 완전히 갈라서 지금의 중원로터리 일대에 일본인 주거지를, 인근 경화동엔 조선인들 주거지를 만들었어요. 진해를 '빼앗은 자의 도시'와 '빼앗긴 자의 도시'로 구분했어요."

애초 그들은 중원로터리 일대 지금의 중앙동에 일본인 전용 주거지를 만들면서 조선인들 주거지를 지금 진해구청 일대 석동 정도에 확 띄어 놓으려 했다. 하지만, 당시 대중교통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력을 제공할 조선인들을 너무 멀리 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화동을 선택했다는 설명이 따랐다.

경화초교 아래 경화로 33번길에서 골목 산책을 시작했다.

▲ 남북을 잇는 충장로 양철지붕은 이 동네 100년 연륜을 전한다. /이일균 기자

서쪽으로 경화로를 따라 걷다가 남쪽으로 충장로를 따라 걷고, 다시 또 경화로를 걷는 식으로 지그재그로 걸었다. 남동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선회해 경화시장을 목적지로 두는 구간이다.

이곳에서 곧바로 경화동 골목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말한 대로 넓고 곧다. 동네마다 그 끝에 소광장이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고인이 된 김상석(당시 75세) 어르신이 10년 전 이런 말씀을 했다.

"따로 살면 데모하니까 한 군데 모은 거제. 감시하기도 쉽고. 광장은 일본말로 '히로빠'요."

"경화동만 해도 다섯 군데나 있는데 옛날에는 장터로 썼지.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지만, 처음 만들 땐 동서남북 잘 감시할라꼬 만든 것 같은데…."

전체 다섯 곳 광장 중 하나를 다시 만났다.

...

이어지는 경화로 29번길, 25번길, 다시 아래쪽으로 뻗은 충장로 305번길.

담벼락 넝쿨, 길바닥의 이끼….

목조집에 양철지붕, 경화로 17번길의 '대동여인숙'.

경화로와 충장로 번갈아 걷고 있으면 이렇게 오래된 것들이 많다.

경화동 동서를 잇는 경화로 골목 안 대동여인숙. /이일균 기자

◇진해의 불종거리

그리고 불현듯 나타난 '불종'.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져 화재 등 구급상황을 알리고, 구호·부역 시 소집도구 역할을 했다. 2005년 이곳 불종거리에 복원됐다."

이곳 불종이 오늘 새삼스러운 건 주변 경화동 1~4통 동네 4곳이 '경화구역재개발지구'로 재개발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근처 공인중개사는 "아이구 빨리 돼야지예. 10년 넘게 걸린 일인데…" 하며 기자를 재촉했다.

재개발 추진과 함께 경화동이 창원시 주거지 도시재생사업 후보지로 설정돼 있는 점은 묘하다.

물론 도시재생에 대해 주민들이 자발적 의지를 보인다거나, 근거가 될 만한 기구나 경과가 있는 건 아니다. 주거지역 낙후도와 옛 창원·마산·진해 지역안배 원칙에 따라 후보지로 돼 있다는 것이 창원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재개발은 원주민이 보상을 받고, 집을 비우고, 그 집을 뜯고 터를 다시 닦아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도시재생은 주민들이 사는 집과 골목, 동네 전체의 윤곽은 그대로 둔 채 이를 정비하고 개선하는 사업이다.

핵심적 차이는 원주민이 계속 현 거주지에 사느냐, 아니냐다. 재개발 주민도 보상을 받고 분양을 받으면 계속 살 수 있지만, 그건 일부다.

재개발 예정지 안에 사는 홍광웅(75) 어르신.

"요즘은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져가요. 창원지역 아파트 미분양률이 전국 1위라잖아. 재개발이 결국 서민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법 아니에요?"

"여긴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 집수리만 하면 사는 사람들인데, 아파트 분양비에 관리비, 유지비까지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결국 경화동 내에 재개발과 재생이 공존하는 상황이고, 재개발 예정지인 불종거리 주변 1~4통 주민들은 이곳에 계속 사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섰다.

재개발 예정지 가운데에 있는 '불종'은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

날씨가 계속 쌀쌀했다.

그래서 경화시장 가는 길을 재촉했다.

경화로 18번길, 동서로 뻗은 골목길을 이번에는 동쪽으로 걸었다.

끄트머리에서 만난 건 시장통 한참 아래쪽이었다. 거슬러 올라가 경화로 30번길 바로 위에 시장통이 있다.

경화로 30번길의 장터풍경, 이대포, ○○○○, ○○○○….

이 골목을 낮에 오다니, 아쉽다. 쌀쌀한 날씨, 술 한잔 걸치지 못하는 아쉬움을 40년 전통 할매국밥집에서 선지국밥으로 달랬다.

경화초등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길.

10년 전 시끌벅적했던 노인들은 거기에 없었다.

싸움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경화로 골목을 우산 쓰고 걷는 노인을 봤다.

비는 이미 그쳤다. 하지만 활짝 펴진 우산은 굳건하다.

반쯤 굽은 다리, 한쪽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

노인이 점점 더 작아졌다.

▲ 2006년 8월 2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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