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사랑 끝에 남은 애달픈 '갈대의 노래'
호수 요정을 좋아하게 된 목동…요정은 복잡한 맘에 달아나고
목동, 강가서 요정 손목 잡지만 정작 목동 손엔 마른 갈대꽃만

깊은 숲속 맑은 호수에 시링크스(Syrinx)라는 요정이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발길로 물을 찰방거리며 놀았어요.

그 호수에 달이 떠오르자, 아슴한 물안개가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은은한 팬플루트 소리가 깔리는 듯했어요.

"아! 달님, 저는 여신이신 아르테미스(Artemis) 당신을 숭배하고 있어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여신이신 당신만을 위해 살 거예요."

시링크스 요정이 달님을 향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말하자, 달님은 시링크스의 말에 답이라도 하듯이 구름 속에서 나와 호수 안에다 환한 달빛을 가득히 담아 주었어요.

얼마를 그렇게 놀던 시링크스 요정은 여태까지의 나약함이 무색할 정도의 억센 힘으로 일어났어요. 시링크스는 여자답지 않게 활과 화살을 들고 내일 아침 사냥을 준비하기 위해 호숫가 요정의 집으로 걸어갔어요.

"내일은 어느 숲으로 가서 사냥을 할까?"

달님이 그런 시링크스의 날씬한 몸을 비추어 주었어요. 시링크스는 날렵한 몸동작과 너무도 예쁜 얼굴이어서 요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요정으로 뽑히기도 했어요. 피부가 얼마나 희고 곱던지 달님도 그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어 했어요. 그렇게 예쁜 시링크스가 활을 들고 남자처럼 숲속의 사슴을 사냥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호수 주변으로 아주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 초원에는 팬(Pan)이란 음악에 재능이 뛰어난 목동이 있었어요. 그의 음악적 재질은 꽃의 여신 플로라와 견줄 정도의 재질을 가지고 있었어요. 수많은 양떼를 몰고 초원에서 평화롭게 살면서 밤이면 하늘의 별을 보고 노래하며 그 많은 별마다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하늘에 별이 총총 너무도 아름답구나. 저 많은 별들을 밤마다 헤며 잠이 드는구나."

그런 팬은 남자로서 늠름한 모습이 감히 누가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하고 씩씩했어요. 그런데 그의 아랫도리는 염소 모습을 하고 있었고, 위쪽은 아주 늠름한 사내대장부의 모습이었어요. 활과 화살을 들고 말 안장 위에 올라 말을 달리면 그 넓은 초원에서 감히 누가 팬을 따를 수 없었어요.

"아! 나도 예쁜 처녀가 있으면 연인이 되어 이 적막한 초원에서 함께 노래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팬이 양떼를 몰고 우연히 호숫가 숲속을 거닐다가 시링크스를 만나게 되었어요. 시링크스 요정이 그 날렵한 몸으로 민첩하게 커다란 둥치 바오바브나무를 돌아 나오다, 목동 팬과 마주치게 되었어요.

팬은 첫눈에 시링크스를 보자, 숨이 멎을 듯했어요.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시링크스에게 말을 했어요.

"아, 당신은 그 아름다운 요정 시링크스가 아니오?"

"어떻게 저의 이름을 아시나요?" "아니? 이 호수 근처에 사는 사람치고 아름다운 요정 그대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밝은 햇살에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말하는 시링크스를 보자, 팬은 이 세상에서 저런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 저런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으면 소원이 없으련만.'

팬은 당장 그 자리에서 두 손을 위로 높이 들고 시링크스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그는 아름다운 그의 테너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시링크스 그대여, 별빛의 아름다움, 달님의 미소를 그대에게 바쳐 사랑을 고백하오. ♬'

그 초원에 팬의 독특한 테너 목소리의 노래가 울리자, 그 울긋불긋 꽃들이 밝은 웃음으로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오고, 새들이 함께 지저귀어 주었어요. 거기에 해님이 나직이 내려앉아 그 밝은 햇살을 듬뿍 쏟아 부었어요. 황홀했어요.

시링크스는 그 황홀한 초원에서 팬과 눈길이 마주쳤어요.

"아! 저 늠름한 어깨, 영혼을 맑게 헤엄치듯 하는 맑은 테너 목소리."

시링크스는 눈을 감고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았어요.

'나는 달의 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며 살았다.'

'더구나 저 팬의 아랫도리가 사람도 아닌 염소의 모양을 하고 있어.'

팬은 시링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는 떨리는 목소리, 손을 들어 그녀의 응답을 기다렸어요.

시링크스는 얼굴이 긴장되었어요. 여자로서 여태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달의 신 아르테스를 숭배하고 살아온 자신의 일생을 한순간에 바꿀 수 없었어요.

"나, 시링크스는 단호하게 말하오. 나는 아직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오. 당신의 사랑을 정중하게 거절하오."

그 말을 듣자, 팬의 얼굴이 마치 성난 사자처럼 무섭게 변하여 당장이라도 그에게 손을 뻗어 팔을 움켜잡을 기세를 보였어요.

시링크스는 팬의 그 험상궂은 얼굴을 보자, 질겁을 하고 팬의 손길이 닿지 않을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팬은 남자로서 늠름한 자기의 사랑을 시링크스가 순순히 받아 줄 것으로 알았으나 예기치 않은 일을 당하자, 황당하여 얼빠진 사람처럼 달아나는 시링크스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얼마를 그렇게 서 있던 팬은 정신을 차려 시링크스를 잡으려고 그 뒤를 뛰었어요.

시링크스는 뒤쪽에서 따라오는 팬을 따돌리기 위해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다가 그의 앞을 시퍼런 강물이 가로막자, 어쩔 줄을 몰랐어요.

"어쩌나, 강물을 건널 수도 없고? 팬에게 잡히는 것보다 푸른 강물에 빠져 죽어버릴까?"

시링크스는 강둑에서 시퍼런 강물을 바라보고 '강의 신'에게 두 손을 모으고 간곡하게 빌었어요.

"강의 신이시여.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 팬에게 잡히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습니다."

강의 신은 시링크스의 말을 듣고 깊은 고뇌에 잠겼어요.

"강의 신 나로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구나. 아름다운 시링크스여! 그러나 그대를 지켜주고 싶구려."

그 순간, 시링크스 뒤를 쫓아오던 그 무서운 팬이 억센 손을 벋어 하얗고 부드러운 시링크스의 손목을 무섭게 끌어당겼어요.

"으악 ! "

팬은 숨을 씩씩거리며 시링크스의 손목을 자기 앞으로 힘차게 잡아 당겼어요.

그러나, 정작 그의 손안에는 마른 갈대꽃이 부스럭거렸어요. 강둑에는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수없이 많은 갈대꽃이 하얗게 바람에 쓰러졌다 일어서곤 했어요.

팬은 갈대꽃을 잡고 탄식을 했어요.

"아 그렇게 아름다운 시링크스가 갈대꽃으로 변하다니!"

그의 깊은 한숨이 갈대꽃 숲에서 구슬픈 피리 소리 같은 노래가 되어 웅웅거리고 사방으로 울려 퍼졌어요. 팬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시링크스를 잊지 못해 그를 위한 애달픈 노래를 응얼거리다가, 갈대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그 아름답고 애달픈 자기의 마음을 피리에 실어 불었어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팬플루트라고 해요.

시링크스가 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대꽃의 꽃말은 '신의', '믿음', '지혜'라고 합니다. /시민기자 조현술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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