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얼굴 없는 기부자의 선행이 화제다. 익명의 한 기부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거액의 기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선행도 아름답지만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기부금을 마련했다는 사연이 더욱 훈훈한 감동을 준다.

익명 기부자의 선행은 즐거운 때일수록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전통의 미풍양속이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쇠퇴한 아름다운 전통의 복원이 절실한 때이다. 자선지원재단(CAF)이라는 단체에서, 도움이 필요한 모르는 사람을 도운 행위, 자선 기부 행위, 자원봉사 시간 등을 지표로 전 세계 기부 지수를 조사한 결과, 올해 한국은 144개 나라 중 60위로 나타났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수치이다. 이 단체의 조사에서 1위는 인도네시아였고 10위 안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나라가 두루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기부 지수가 경제력과 반드시 연관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경남 기부천사'는 그동안 기부금과 함께 동봉한 두 차례 편지를 통해 병원비가 절실한 중증장애인, 난치병 환자 등에게 쓰이기를 희구한다고 거듭 밝혔다. 지난해 기부금은 실제 기부자의 뜻대로 쓰였다. 중증장애인이나 난치병 환자는 우리 사회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감당해야 할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개인 기부자의 선행을 자극한 듯하여 안타깝다. 정부와 지자체는 복지제도의 확충이 절실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얼굴 없는 기부 천사는 언론이나 기부 모금 단체의 관심이나 추적을 통해 때때로 신원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 기부 문화의 정신을 망각한 행위이다. 기부자가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낸 편지 내용이나 필치가 언론에 알려짐으로써 기부자의 신원이 윤곽을 드러낼 수도 있다. 내년에도 기부를 약속한 '경남복지천사'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높다. 부디 우리 사회의 선정적인 문화가 기부자의 숭고한 뜻을 왜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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