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훈남 청년의산타 선물같은 초대
이탈리아서 만난 인연으로 마이클의 부모님댁 방문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감명
아이거산에서 알프스 감상빈사의 사자상·카펠다리 구경

스위스는 북유럽에 있는 노르웨이, 핀란드와 함께 물가가 아주 높은 나라다. 호텔에서 숙박하려면 하루 최소 15만~2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 같은 장기여행자들은 경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비싼 호텔에서 오랫동안 지낼 수가 없다.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유럽의 캠핑장은 시설이 좋아 더운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 비용도 15~20유로(2만~2만 6000원) 정도라서 비교적 싸게 캠핑장을 이용했다.

◇우연히 만난 알프스 아이거산

그림젤 패스 아래 마을에서 캠핑을 하던 첫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에서 만났던 마이클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자기 집에서 지내도 좋다고 알려온 것이다.

취리히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잠시 관광헬기회사인 '스위스헬리콥터'를 찾았다. 헬기를 타고 알프스 정상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가 있다는 안내문을 캠핑장에서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프스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었다. 헬기장 위치를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다. 그런데 헬기장에 도착해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헬기는 건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휴일이거나 운항기간이 아닌 듯했다.

▲ 아이거산 빙벽을 따라 가는 길.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헬기장 뒤편 산 위쪽으로 이어진 작은 길이 보였다. 지도에도 없는 좁은 도로였다. 지훈이와 그 길을 따라 올라가보기로 했다. 산길은 차가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1시간 정도 산길을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저 너머에는 눈 덮인 산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간간이 알프스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산속을 오갔고, 마을 사람들이 기르는 소의 방울소리만 달랑거렸다. 스위스의 대자연을 온전하게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고개를 두어 시간 오르내렸더니 이번에는 '그린델발트'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차가 서는 역이었다. 지도를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이거산 아래를 지나온 셈이었다. 아까 산속에서 봤던 경치 좋은 산이 바로 아이거산 빙벽이었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오토바이로 달리는 스위스 고속도로

우리는 그린델발트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인터라켄을 거쳐 취리히로 향했다. 가는 길에 비가 내려 추웠지만 중간중간 지나는 터널 안은 따뜻했다.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이유로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못 가지만 그동안 지나 온 다른 나라에서는 고속도로로 다닐 수 있다. 스위스 고속도로에는 터널이 많아서 좋았다.

취리히 근처에 가서 마이클에게 연락을 했다. 마이클은 오래된 오토바이를 타고 마중 나왔다. 스위스는 잘사는 나라여서 그런지 도로에 벤츠 BMW 등 독일제 고급자동차들이 많이 보였다. 반면 20년도 더 된 오토바이를 고쳐가며 타고 있는 마이클의 모습은 의외였다. 잘사는 나라라고 해서 돈을 막 쓰거나 낭비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마이클은 28세이지만 아직 대학생이다. 부모의 도움을 안 받고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마이클의 부모님은 취리히에서 조금 떨어진 루체른에 산다.

"지훈아 내일은 '루체른'으로 가볼 생각이야. 우리 부모님집이 거기 있는데 지훈이랑 지훈이 아빠가 여기로 여행 왔다고 하니 우리 부모님이 초대하셨어." 마이클이 우리를 부모님 집으로 초대의 말을 건넸다.

다음날 아침 취리히 마이클의 집을 나와 루체른으로 향했다. 마이클이 앞장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갔다.

마이클의 부모님 집으로 가는 길에 마이클의 가이드로 루체른 시내 '빈사의 사자상'과 '카펠다리'도 구경했다. 빈사의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혁명 때 튈르리 궁전에서 사망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카펠다리는 1333년 로이스강에 놓은 다리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다리다. 길이가 200m에 이른다. 우아한 형태 덕분에 현재 루체른의 상징이 됐다. 둘러보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돼 있었다.

◇유쾌한 스위스 사람들

마이클 부모님 집은 루체른 외곽에 있었다. 예쁜 뾰족지붕 3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작은 창고와 잔디밭이 있었다. 1층은 주방, 2층은 거실, 3층은 침실이었다.

마이클의 부모님과 동생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이클 어머니는 스위스 가정식 요리를 준비해 주었다. 우리는 다 같이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끝난 후 마이클 어머니가 지훈이에게 "산책하고 싶니? 아니면 보드게임이 좋니?"하고 물어보았다. 스위스에서는 식사 후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지훈이는 당연히 "보드게임 할래요"라고 대답했다. 거실 한쪽에 놓인 서랍장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보드게임이 있었다. 마이클 형제들이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갖고 놀던 것들이라고 했다.

게임을 하며 대화가 통해야 되기 때문에 규칙이 쉬운 것을 골라 온 가족이 웃으며 게임을 즐겼다. 게임 중간에 마이클의 아빠가 일부러 지훈이를 골탕 먹였다. 지훈이도 같이 복수를 하고 장난을 쳤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밀고 당기는 게임의 법칙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도 작은 보드게임과 비슷하지 않겠는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금세 마이클 가족과 친해졌다. 스위스의 가족들은 대화도 많이 하고 장난도 잘 치며 잘 웃는 것 같았다. 여유롭고 화목해 보였다. 한국의 가정에서는 대개 휴대폰 또는 TV를 보며 각자 개인의 시간을 즐기는 편인데 스위스는 달랐다.

한국 사람들의 근무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후 6시면 가게들이 문을 닫는 데도 우리보다 훨씬 부자나라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나라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가 뭔지 지훈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할까?

우리는 다시 취리히에 있는 마이클 집으로 돌아와 잠을 푹 잤다. 내일은 여기서 200㎞ 떨어진 독일의 도시 러스트로 간다. 거기에는 세계최대 놀이공원인 유로파 파크가 있다. 마이클 형이 그곳까지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인연이 계속된다.

/글·사진 최정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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