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잠들지 못하는 시인의 밤

그를 처음 만난 게 술자리였다. 그때도 아마 우무석 시인과 함께였던 것 같다. 강신형 시인의 시집 <관심 밖의 시간>을 읽다 문득 그 술자리가 생각났다.

"하릴없이 책을 보다가, 무료하여 음악을 씹다가 해시계가 잠시 꾸뻑 잠에 빠져 들어갈 무렵이었을까? 화이트 소주 두 병이면 고양이도 어쩌지 못하는 삼매경에 빠져드는 우무석 시인이 전화를 한다. (중략) 누가 먼저 술 마시자고 말을 건넸는지 벌써 창동은 술에 취해 새벽달이 벌겋다." ('술 마실래' 중에서)

독설가이자 능변인 우무석 시인 앞에서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아마도 과묵한 성격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 묵묵함이 몇몇 시 형식에 그대로 드러난다.

"절/절/하는// 꽃 한 송이.// 견디어/ 피/ 어/ 나/ 는// 땅.// 나, 너/ 그리고 누구" ('사랑법' 전문)

밤에 대한 감성이 유독 많은 시집이다. 자신을 황혼이라 여기기에 밤은 곧 그의 마지막 숨소리가 머무는 곳일 테다.

두려움보다는 그저 뒤를 돌아보려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그의 방과 그의 밤을 생각해 본다.

"지난 세월의 기억을 지워가는 검은 하늘 점점으로 내려와 또 하나의 빛나는 사치라고 말한다. 그냥 무심코.// 어수선했던 선잠의 꿈이 그나마 따뜻했던 나는, 가을이 농익어 가는 이 밤의 풍경에 마음의 짐 무엇 하나 먼저 부려놓아야 할지 천리 길 바람 이야기 듣다, 졸다." ('바람, 이야기 2' 중에서)

묵묵한 시인에게 건배! 그의 빛나는 황혼에도 건배.

"세상의 슬픔과 기쁨은/ 황혼녘에 모두 빛나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황혼에 서서' 중에서)

서정시학, 103쪽, 1만 1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