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라도 당신을 만나다니 다행이죠
퀸 찬란한 시절 속 주인공 머큐리 삶 잔잔히 녹여 내
40·50대엔 추억 소환…20·30대엔 음악 폭 넓힌 작품

미리 알려둔다. '퀸(Queen)'을 모른다. 그들의 몇몇 노래는 야구장 응원가로 들었었다. 기자는 그들이 데뷔한 1973년에 이 세상에 없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대미를 장식한 1985년 7월 13일 라이브에이드 공연도 보지 못했다. 그러고 한 달 후 세상에 태어났다. 기자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 성시원처럼 '응칠 세대'다. 90년대 중반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기자는 하얀 풍선을 들고 우비를 입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리뷰할 계획은 없었다. 고전적이며 예상 가능한 전기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30대 젊은 세대가 반응했다는 분석이 나오니,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서 생각했다. 주인공이 'H.O.T'였다면 펑펑 울며 오빠들을 더 사랑한다고 다짐했겠노라고. 이 글은 평소보다 더 개인적인 리뷰임을 밝힌다.

여운이 길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연출 브라이언 싱어, 미국·영국)를 본 지 몇 주가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나도 모르게 불쑥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MA ma(마마)", "Love of my life(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처럼 완벽하지 않은 음정과 가사지만, 흥얼거리며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를 생각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이자 "영국에는 여왕이 2명 있다"는 말을 만들어낸 퀸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특히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배우 라미 말렉)를 중심으로 드럼연주자 로저 테일러(배우 벤 하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배우 귈림 리), 베이시스트 존 디컨(배우 조셉 마젤로)과 함께 퀸의 시작과 화려한 성공, 위기 등을 짚는다.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는 입체적이다.

그는 페르시아계 인도인 부부에게서 태어났다.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 있는 잔지바르 출신이다. 영국에서 사는 가족, 특히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지만 스스로 이름을 바꾼다.

그를 연기한 미국 배우 라미 말렉은 치아를 강조한 분장과 헤어스타일로 이국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영화에서 그는 영감이 넘쳐흐르는 예술가다. 작곡과 작사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데가 없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지나치게 섬세하다. 알 수 없는 눈빛을 타인에게 보내기도 한다. 예술가의 지나친 감성이라고 여기려는 찰나, 그의 성 정체성이 드러난다.

▲ < 보헤미안 랩소디 > 한 장면. /스틸컷

프레디 머큐리는 보통의 삶을 살지 않았다. 영화에서 파시(Parsi)라고 표현되는 소수 민족이며 동양계 이민자, 또 동성애자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정확히 알기 전 만났던 연인이자 친구로 남은 메리 오스틴(배우 루시 보인턴)을 향한 곡 'Love of my life(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는 가슴을 더 저리게 한다.

퀸은 록밴드지만 장르를 초월한다. 그는 퀸을 "부적응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부적응자들이다"고 말하는데,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다.

영화 중반부, 영화 제목과 같은 곡 'Bohemian Rhapsody(보헤미안 랩소디)'가 탄생하는 과정이 나온다. "Mama just killed a man(엄마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충격적인 가사와 다르게 감미로운 전반부에 이어 '갈릴레오'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오페라가 등장한다. 6분 가까이 되는 긴 곡은 당시 돈을 댄 제작자가 반대해 앨범 발매가 어려웠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재치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곡은 퀸의 페르소나를 응축했다는 평을 받는다. 아카펠라를 시작으로 발라드, 오페라, 하드록이 변주되는 파격적인 노래다.

1975년에 발표된 곡은 국내에서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다. 노랫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그 시대가 안타깝다.

라이브에이드의 떼창(큰 무리가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것)은 왈칵 눈물을 쏟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다시 보고 들어도 전율이 인다. 퀸이, 프레디 머큐리가 음악이 운명이고 무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절실히 알겠다. 이 장면에서 노래를 함께 따라부를 수 있는 관객이라면 아마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떠난 지 20여 년, 퀸을 모르는 누군가가 영화를 통해 접한 그의 노래는 정말로 좋다. 명불허전의 명곡은 '퀸망진창'(퀸과 엉망진창의 합성어), '퀸치광이', '퀸뽕 맞았다'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전국을 퀸 열풍으로 물들인 흥행과 직결됐다. 40~50대에게는 그 시절 추억을 소환했고 20~30대에게는 음악의 폭을 넓혔다. 만약 헤비메탈과 하드록이 주였다면 이 정도까지 흥행을 할 수 있었을까.

또 귀를 호강해주는 곡들을 차치하고서도 프레디 머큐리의, 한 예술가의 삶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누구보다 방황했을 그이기에, 연민이 느껴진다. 특히 에이즈 진단을 받고 나서는 병원 안, 그를 알아본 다른 환자의 짧은 인사를 그는 흔쾌히 받아들이며 호응을 해준다. 여기서 프레디 머큐리를 더 알게 됐다.

영화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 시절 우상을 투영해 나의 찬란했던 때를 돌이켜보는 것은 예상보다 더 멋지단걸 <보헤미안 랩소디>가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추가하자면 나도 그런 영화를 만나고 싶다. 지금 10대에게 간절한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연출 박준수)처럼 말이다. '2017 방탄소년단 라이브 트릴로지 에피소드3 윙스 투어(2017 BTS LIVE TRILOGY EPISODE III THE WINGS TOUR)'를 가장 가까이에서 담아낸 방탄소년단의 첫 번째 영화처럼.

퀸도 아니고 방탄소년단도 아닌 나도 떼창을 하고 싶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