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 담담한 일기 같은
70대 시인의 일상과 생각

일흔둘. 이우걸 시인의 일상이 시집 곳곳에 담겼다. 어찌 보면 다 가진 시인이다. 작품 전집이 발간됐고, 작품 세계를 조명한 책도 나왔다. 개인 이름을 내건 멋진 문학관도 하나 있다. 하지만, 시어에 담긴 그의 일상은 오히려 해거름 자신의 긴 그림자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내의 애잔한 눈빛 같은 이미지다. 이미 긴 세월을 건너온 사내의 발걸음은 느리고 묵묵하다.

"오늘도 불안은 우리들의 주식이다/ 눈치껏 숨기고 편안한 척 앉아보지만/ 잘 차린 식탁 앞에서 수저들은 말이 없다// 싱긋 웃으면 아내가 농을 걸어도/ 때 놓친 유머란 식상한 조미료일 뿐/ 바빠요 눈으로 외치면 식구들은 종종거린다// 다 가고 남은 식탁이 섬처럼 외롭다/ 냉장고 밀어 넣은 먹다 남은 반찬들마저/ 후일담 한마디 못한 채 따로 따로 갇혀 있다"('아침 식탁' 전문)

"드디어 저녁 밥솥이 긴 한숨을 내뿜고 있다// 이 집의 고비들을 저 솥은 알고 있다// 가등도 골목에 서서// 늦은 주인을 기다린다"('불황' 전문)

그의 시들은 시인과 나란히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삶이란 긴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

"눈이 밝았을 땐 귀가 어두웠지요// 어쩐지 남의 얘긴 들리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귀가 열리는데// 자꾸 눈이// 어두워져요."('눈과 귀' 전문)

"의자와 지폐를 쫓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먼 데 구름과도 눈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낙엽을 깔고 앉아서/ 바둑돌을/ 가리고 있다"('오후' 전문)

"부모님의 봉분은 늘 하나의 질문이지만/ 아직도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내게는 삶에 대해서/ 늘 준비가 부족하다"('발견' 중에서)

아직도 자신을 대변할 어울리는 작품이 없다고 한 시인의 말을 좋아한다. 주변 풍경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여전히 원고지에 또박또박 시를 적는 시인의 뒷모습 같기 때문이다. 시인동네 펴냄, 112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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