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줄고 지방공무원 늘고
인구 10만 이하 국 설치 허용 뒤 곳곳에서 조직·인원 '확대'바람
행정효율 기대 속 방만운영 우려
전문가 "증원, 복지·안전에 국한 주민참여형 자치 안착 더 시급"

경북 영양군의 지난달 인구는 1만 7369명이다. 경북도 내 23개 시·군 중 섬 지역인 울릉군을 빼면 가장 적다.

그런데도 영양군은 내년 1월 조직개편을 통해 1실·10과·1사업단인 행정조직(본청)을 2국·12과 체제로 확대한다. 국(局) 2개와 담당(팀) 6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정원도 지금(478명)보다 16명 늘어난다.

인구만 놓고 보면 대도시 1개 동(洞)에 불과한 미니 자치단체지만, 공무원 수 500명에 육박하는 '거대 행정조직'이 되는 셈이다.

인구 987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작은 자치단체인 울릉군도 지난 9월 '자치행정국'과 '관광경제건설국'을 신설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행정조직은 75팀에서 77팀 체제로 확대됐고, 380명이던 공무원 수는 398명으로 늘어났다.

울릉군 관계자는 "국을 신설해 업무분장을 효율화했고, 인구정책과 공항 신설 등을 지원할 인력도 새로 배치했다"고 개편배경을 설명했다.

▲ 지난달 창원시 인구정책위원회 위촉식과 첫 회의. /경남도민일보 DB

◇인구 10만 이하 지자체 국 설치 허용…조직 확대 봇물 터지듯

인구나 재정 규모가 크지 않은 농어촌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조직 확대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월 행정안전부가 '시·군·구의 기구설치 및 직급 기준'을 마련해 자치단체마다 자율적으로 실·국 단위 행정조직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전에는 인구 10만 명을 넘을 경우에만 국을 둘 수 있었다.

국이 만들어지면 4급(서기관) 국장이 신설되고, 같은 수만큼 5급(사무관) 과장 자리가 생기는 등 조직과 인원이 확대된다.

효율적인 조직관리와 행정서비스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방만한 조직운영 우려도 제기된다.

충북에서는 인구 10만 명 이하 자치단체 7곳 중 진천·영동·괴산군 3곳이 올해 하반기 일제히 국을 설치했다.

옥천·보은·증평·단양군 등 나머지 4곳도 새해 1월 1일 자로 국 설치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 중 옥천군(5만 1452명)을 제외한 3곳의 인구는 4만 명을 밑돈다. 단양군은 3만 명 선에 가까스로 턱걸이한 상태여서 머지않아 2만 명대 추락이 예상된다.

옥천·보은·증평·단양군 모두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20%를 넘어선 초고령 사회여서 인구 감소 폭이 해마다 더욱 가팔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은 옥천·보은·증평·단양군 등 전국 84개 지자체 인구가 30년 안에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충남 보령시가 1국·3과·11팀을 신설해 936명인 정원을 47명 늘리는 조직개편안을 마련했으며, 서산시와 태안군도 정원을 28명과 5명 늘리는 조직운영 방침을 확정했다.

전남 담양·구례·장성·완도·진도·신안군이 일제히 국을 신설해 조직의 몸집을 불렸고, 보성군도 내년 초 같은 방식의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 설치를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자치단체도 생겨나고 있다.

전남 곡성·고흥·장흥·강진군 등은 국이 생기면 결재라인이 늘어 업무능률이 떨어지고, 인건비 증가 등 행정 효율성 저하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어 국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이방무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제도과장은 "이 조치는 (지방 관가에서 소위) '4.5급'으로 분류되는 읍장이나 선임 과장 기능을 지역 실정에 맞춰 강화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이라며 "방만한 조직운영을 막기 위해 해마다 기구·정원 운영현황을 지방의회와 주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 통영시가 저출산 문제점과 대책을 논의하고자 지난달에 연 '2018 통영시 인구정책 포럼'. /경남도민일보 DB

◇"혈세낭비" vs "복지수요 필연"

소규모 지방자치단체의 실·국 조직 확대를 놓고 전문가, 지방의회, 시민단체 간에 의견이 엇갈린다.

임만재 충북 옥천군의회 의원은 최근 조직개편안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인구가 계속 줄고 서민경제도 어려운데, 공무원 자리를 대폭 늘리는 조직개편이 꼭 필요하냐"며 "늘어나는 공무원 수만큼 한 해 20억 원의 인건비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도 "시·군이 조직운영의 효율성 등을 따져보지 않고 경쟁적으로 국 설치에 나서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조직만 확대하기보다는 달라진 행정수요에 맞춰 인력을 재배치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복지 서비스 증가에 따른 공무원 증원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증원 분야를 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시민감시팀장은 "지방분권이 강화되면서 지방자치단체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 담당 공무원이 느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증원 분야는 시민 삶과 밀접한 사회복지, 소방 안전 등에 국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5급 이상 고위직을 늘리는 조직개편은 과연 옳은 방향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지방자치의 효율은 공무원 증원보다는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가 얼마나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홍순현 중앙대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실·국 증가에 따른 공무원 수를 규정하기보다는 지자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의회 의원들이 전문성을 갖고 행정구역을 관리·감독해 공무원 조직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조직 확대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 등이 증가하는 만큼 공무원 증원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원식 경남대 교수는 "인구가 적고 낙후된 지역일수록 빈곤, 복지 등 문제 때문에 오히려 더 공무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인구만 보고 공무원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 국민당 공무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많은 편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복지 이슈를 내세워 무조건 인원을 늘리기보다는 효율적인 조직운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지자체별로 방문 의료, 방문 행정 등 사회서비스 산업을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행정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화한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상선 충남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는 "공공영역에서 일자리 창출 등 명분 때문에 공무원을 늘리고 있다"며 "관료 조직을 확대한다고 해서 행정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행정수요 다원화에 맞춰 늘릴 것은 늘리고 줄일 부분은 과감히 없애는 등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관료사회에 집중된 재원을 주민 참여자치 예산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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