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역군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은퇴
인생 추스를 무기로 문화예술활동 추천

찬바람 속 일찍 집을 나서는 사람은 건널목 앞에서 눈물바람을 한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먼산보기를 하다가 가끔 옆 사람도 흘낏거린다. 이때 눈이 마주치면 낭패다. 십중팔구 서로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멋쩍은 웃음이 나오고 연신 눈물을 닦으며 속으로 말 건넨다. '당신도 노안이구먼.' 조용필의 노래도 떠오른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건널목 앞에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람은 중년일 확률이 높다. 50살에서 64살까지로 베이비 붐 세대에 해당한다. 우리 지역 수많은 공장에서 은퇴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이어가야 끝을 모르는 자식 교육비도, 노후자금도 확보할 수 있다. 멀쩡한 청년들도 팽팽 노는 시국에, 다시 일하게 된다 해도 '나쁜 일자리'일 가능성이 99퍼센트다.

베이비 붐 세대는 아날로그세대의 표준형이다. 한 직장에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다가 은퇴를 맞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새마을운동 맛도 살짝 보았고 IMF의 혹독한 경제위기도 겪었다. 부모세대는 굶었어도 여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살았다면, 이 세대는 국가부도와 같은 충격적인 경제 상황을 온몸으로 맞으며 개인 삶에서 누려야 할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다. 이른바 문화예술이 포기한 대표 분야에 해당한다. 혹시라도 문화생활, 예술에의 동경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가차 없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그게 밥 먹여 주냐?' 이들이 밥만 먹다가 죽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까. 설마, 해야 할 일만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없는 세대는 아닐 것이다.

2018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란 프로그램이 시범사업으로 경남, 세종, 대전, 인천, 전남 등에서 추진되었다. 중년들이 지금껏 밥 먹고 사느라 포기했던 길,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게 하자는 취지다. 특히 취약한 문화예술 분야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돌보는 것이 핵심이다. 경남에서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협업했다.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고마운 내 인생 쓸만한교(校)'란 이름으로 세 개 프로그램과 부록으로 한 개 프로그램이 시범 운영되었다. '오늘부터 삶을 디제잉하다', '소리내다, 나를 보다', '셀프 에세이, 글과 연애하다'이다. 부록 같은 '사람향기, 나무 내음'으로 나무와 짧고 굵게 교감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 모두, 생애전환기를 맞은 세대가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아갈 힘을 얻도록 한다는 것은 어쩌면 돈 버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강제하거나 억지로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특별히 자존감이 커지는 작업이다.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자는 취지는 중요하다. 의무감이나 강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와 예술을 도구로 하는 작업인 만큼, 철저하게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의 대화, 사건과의 재회가 반드시 이뤄진다. 평균수명 '130세 시대'를 말한다. '가보지 못한 길'인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알 수 없는 새로운 인생여정, 추스를 무기 하나 장착하는 일은 필수작업이다. 내일 아침, 건널목 앞에 선 청년 또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수 있다. 안구건조증이 온 청년도 자신이 원한다면, 노안이 온 중년처럼 문화예술학교로 생애전환을 시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갈 세상은 바꿔야 하는 구간이 더 자주, 많이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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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칼럼진으로 참여한 김혜란 씨는 마산MBC 원조 '아구할매'로 내레이션 성우, 산업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TBN경남교통방송이 직장인 방송인입니다. 소통과 스토리텔링, 힐링게이미피케이션이 전문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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