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 장쾌한 기세 온몸으로 누려보기
표충사 우화루서 느낀 운치 으뜸
밀양향교 갖은 나무 덕에 윤기나
질문 만들고 미션 풀며 현장답사

밀양은 멋진 고장이다. 역사·문화·자연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산은 높고 물은 깊다. 따라서 당연히 들판은 너르다. 이렇게 터전이 좋으니 옛날부터 사람이 모여들었다. 사람이 끓으면 문화는 절로 풍성해지게 마련이다. 올해 역사 문화 탐방에서 밀양을 찾은 학교는 김해월산중(8월 25일)과 양산 중앙중(10월 11일) 두 곳이다. 김해 월산중은 표충사~밀양독립운동기념관~영남루를, 양산 중앙중은 표충사~밀양향교~영남루를 둘러보았다. 이들은 모두 밀양의 밀양다움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누각이 세상 멋진 표충사

표충사는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으로 떨쳐 일어난 사명당을 모시고 있다. 사명대사는 승병장으로도 유명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 끌려간 조선 포로를 3000명 남짓 송환해 오는 외교관으로 더욱 크게 활약했다. 조선 조정은 이를 인정하고 높이 사서 이 표충사를 두게 되었다. 사명당의 충성(忠)을 표창(表)한다는 정도가 되는데 이 때문에 절간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제사(유교)를 지내는 사당(祠)을 품었다.

표충사 이전에는 이 자리에 영정사(靈井寺)가 있었다. 영정은 신령스러운 우물을 뜻한다. 옛날 신라 왕자가 요즘 말로 한센병이라 하는 '천형(天刑)'에 걸렸으나 여기 머물면서 샘물로 씻고 닦고 마셨더니 깨끗하게 나았다는 얘기가 있다. 표충사 뒷산 재약산이 산마루 즈음에서 드넓은 습지 사자평을 이고 있는 덕분이라 여겨진다.

천왕문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명물을 간직하고 있다. 사천왕이 우락부락하기는 다들 마찬가지이지만 밟고 있는 존재들이 남다르다. 갖은 죄악을 저질렀을 법한 남성 악한들뿐만 아니라 가녀리고 늘씬한 여성 미인들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죄악이 험상궂기만 하지 않고 달콤하고 아름다운 구석도 있기에 쉽게 빠진다는 뜻일까? 아니면 미인을 두고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죄악을 유발하는 경우를 경계하자는 뜻일까?

표충사는 삼층석탑은 물론 중심 전각인 대광전을 비롯한 건물들도 그럴듯하다. 그래도 으뜸은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雨花樓) 차지다. 우화=꽃비는 부처님 말씀을 의미한다. 대광전에서 우렁우렁 넘쳐 쏟아지는 스님 염불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바라보는 산세가 덮칠 듯 압도적이고 내다보는 마당은 밝고 환해서 눈맛도 좋다. 물과 새와 바람과 나뭇잎 등등이 한데 어우러지며 소리를 내는 교향악도 멋진 자리다.

▲ 표충사 배롱나무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는 김해월산중 학생들. /김훤주

◇크면서도 멋진 밀양향교

밀양향교가 우람한 것은 밀양이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향교는 요즘으로 치면 공립 중·고등학교다. 사립인 서원과 달리 한 고을에 하나밖에 두지 않았다. 조그만 고을은 향교도 작았고 밀양처럼 고을이 크면 향교도 덩달아 크게 지어야 했다. 경남 전체를 보자면 가장 큰 진주향교에 버금가고 다른 지역 향교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다.

향교는 대체로 꾸밈이 없고 무미건조하다. 예나 이제나 공립은 메마른 편인가 보다. 진주향교가 그러하다. 하지만 밀양향교는 그렇지 않다. 겨울에도 갖은 나무들 덕분에 윤기가 흐른다. 들어가는 골목에도 나무들이 나앉았다. 들머리는 은행나무 전나무가 웅장하고 성현들 모시는 대성전은 사철 푸른 향나무들이 신선하다. 공부하던 명륜당은 뒤로 배롱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잎 푸른 100일 꽃 붉은 100일 단풍지는 60일이 지나고 나면 맨 몸 그대로 미끈한 100일이다.

▲ 밀양향교 명륜당에서 바닥에 누워 나무의 촉감을 느껴보는 양산중앙중 학생들. /김훤주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

'밀양' 하면 영화 <암살>이 절로 떠오르던 때가 있었다. 초반 도입부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는 대사가 워낙 인상적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제강점기 의열단을 조직하고 대장도 맡았던 김원봉은 밀양이 배출한 독립운동가 전부를 대표할 만하다. 하지만 김원봉도 김원봉만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함께 활동했던 동료와 후배들이 또한 대단했다. 더불어 앞서 모범을 보이며 눈을 띄우고 생각을 일깨우고 몸을 일떠세워준 선배들도 훌륭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밀양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 되었다. 2017년 현재 보훈처를 통하여 공인된 독립운동가만도 73명에 이른다. 이런 정도 되려면 다른 시·군 두엇은 합쳐야 한다. 이래서 밀양은 독자적으로 독립운동기념관까지 갖추었다. 우리나라에서 밀양 하나만 이렇다. 역사가 알차게 갈무리되어 있어 밀양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은 물론 밀양 출신 인물들이 벌였던 독립운동까지 두루 살필 수 있다.

◇영남에서 가장 빼어난 영남루

독립운동기념관 미션은 빡세게 내었고 표충사 미션은 설렁설렁 내었다. 대신 표충사 멋진 대목이나 인상깊은 자리를 찾아 그리기와 궁금한 것을 찾아 질문 만들어오기를 더했다. 그리고 향교에서는 옛날처럼 문답식 또는 토론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옛날 공부와 오늘날 공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생각해 보도록 이끌었다.

영남루에서는 그냥 풀어놓기만 해도 된다. 건축적으로 어쩌고나 역사적으로 저쩌고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넓고 커다란 누각에 올라서 할 일이 아니다. 시원함과 장쾌함과 호활함을 온몸으로 누리는 것이 으뜸이고 제일이다. 대신 고개를 들어 일곱 살짜리 동생과 열한 살짜리 형이 글씨를 쓴 현판을 찾아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이러면 나중에 이들은 '아, 그 멋진 영남루에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쓴 현판이 둘이나 걸려 있었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