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같은 운율 마음까지 녹이는 온기

사소하고 따뜻한 말들이 가득하다. 그 말들 속에 삶의 애잔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하동에 사는 진효정 시인의 시집 <일곱 번째 꽃잎>을 읽으면 마치 시인과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

시와 시 사이에 꼭 "있잖아, 그래서 말이야, 그때 내가 그랬는데" 같은 말들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둘째 오빠 장례식 날,/ 문상객을 맞다가/ 나도 모르게 잔을 들어 건배를 한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허공에 뜬 내 잔은 몸 둘 바를 모른다 (중략) 뭐, 어때?/ 이제 오빠 아플 일 없으니/ 이 얼마나 축하할 일?// 이왕 내친김에 팔을 쭉 뻗어/ 높이 높이 잔을 민다/ 오빠, 건배!" ('뭐, 어때?' 중에서)

"아요 아지매/ 돌아보지 말아야지/ 이것 좀 사서 잡숴봐/ 못 들은 체해야지/ 아이 이쁜 각시야/ 이리 이쁜 각시는/ 어디서 왔을꼬!/ 나는 급 갈등한다" ('홀리다' 중에서)

일상 곳곳에 가만히 머무는 시인의 시선이 곱다. 추운 겨울 양지를 비추는 햇살처럼 깊고 그윽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편의점 자판기 앞에서/ 바닷가 바위틈에서/ 강변 모래톱에서/ 길섶 버스 정류소에서/ 쓰레기통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내가 나에게/ 가장 극진했던 순간마다/ 두 손으로/ 너를 받들었지" ('종이컵' 전문)

문득문득 생의 한 고개를 넘어서는 시인의 옆 얼굴이 시들 사이에 나타나 꼭 다문 입술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묵은 옷가지 정리하다가/ 장롱 문짝 하나 어긋났다// 문짝 하나 떼어내고 보니/ 뚜껑이 반쯤 닫힌 관 아가리// 장롱 안 옷가지들/ 허수아비 같다/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내 모습 같다" ('흠향' 중에서)

그리고 어쩌면 이 시집을 좋아하기에는 이 한 수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스승께서 '달 봐라!'// 하셨는데 나는 왜// 오늘이 음력 며칠인가를// 더듬고 있었을까?" ('가르침' 전문)

북인 펴냄, 112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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