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만남이 잉태한 또 다른 하나의 예술세계
부부 예술가의 회고전 160여 작품 한자리에
각자의 뚜렷한 색깔과 서로가 준 '영감'보여

"인생에서 '만남'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가장 매혹적인 터닝포인트다. 예술가의 경우, 어느 시기에 누굴 만나느냐는 전적으로 다른 진화를 겪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에게 있어서의 '만남'은 결국 세기적인 스캔들이 되며, 그 예술가로 하여금 창작의 핵심으로 인도하는 근원적인 힘을 부여한다. 바로 뮤즈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술가와 뮤즈>(유경희 지음) 여는 글 중 일부.

◇두 예술가가 함께한 40년

예술과 인생을 동반하는 부부 미술인은 서로에게 뮤즈였을까?

문신(1923~1995)과 최성숙(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명예관장) 작가는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 부부 미술인으로 손꼽힌다. 1978년 첫 만남, 79년 조촐한 결혼식, 81년 마산 추산동 언덕에 정착, 94년 문신미술관 개관 등 많은 일을 함께해 온 두 예술가.

▲ 최성숙(왼쪽) 작가와 문신 부부. 추산동 자택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 문신·최성숙 부부의 회고전 '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예술과 일상'을 선보이며 두 예술가가 만난 지 40년이 되는 해를 기렸다.

이번 전시에서 1946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문신 작품 80여 점,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최성숙 작가의 회화 80여 점을 중심으로 두 작가가 평생을 이뤄온 예술 세계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 흔히 볼 수 없었던 문신의 조각상과 한 번도 내걸리지 않았던 채화가 공개됐고, 지역에서 전시가 드물었던 최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 문신 작 '무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어느 때보다 작품·메시지 풍성

미술관 입구와 가까이 있는 2전시관, 최 작가의 회화가 빼곡히 내걸렸다. '미술관의 오후', '축제', '우시장', '춤', '정월대보름' 등 작품은 주변의 소소한 일상과 체험적 풍경 이미지를 밀착해 보여준다. 그녀는 자유롭다. 보편적 필법과 형식을 탈피해 표현한다. 선명한 색선과 색점이 너울대고 비가 쏟아지듯이 나타나는 공간상황도 그녀만의 독특한 특질이다.

최 작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십이지신상' 연작에 몰두했다. 1전시관 2층에서 볼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은 풍경 회화와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는 문신이 타계하고 문신미술관이 시립으로 운영됨에도, 여전히 명예관장으로서 추산동을 지키고 있다. 작품 세계도 깊다. 한국의 미를 그리면서 파격적인 십이지신상을 선보이며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미술관 1전시관 1층과 원형전시실은 문신의 작품이 중심이다.

문신은 조각과 회화 두 영역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1968년부터 한결같이 추구한 시메트리 구조의 추상 조각은 자연의 생성원리를 담고 있다.

사마귀를 연상케 하는 '비상'은 그의 대표작 '개미'와 또 다른 조형미를 보여주고, 원형전시실에 내걸린 채화와 드로잉은 3차원이 되기 전, 선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박효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학예사는 "문신 선생의 고유한 독창성은 생명을 잉태한다. 생(生)에 집중하며 자연과 온 우주를 아우른다. 또 최 명예관장은 예리한 자연관찰의 과정을 거친 뒤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말한다. 자연에 대한 예찬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 이번 전시에서는 문신 선생이 생전에 쓰던 작업 도구를 볼 수 있다. /이미지 기자

◇뚜렷한 작품 세계를 만든 '만남'

미술관을 나오며, 두 예술가는 교감했으나 뚜렷이 구별되는 독창적인 세계를 가졌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품 속에 화합과 사랑, 생명, 리듬이 담겨 있다. 작품은 비슷하지 않을지라도, 문신에게 일상은 곧 예술이었고 최 작가는 일상을 예술로 탈바꿈했다.

1979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두 예술가는 무엇보다 예술 세계에 대한 서로의 존중을 기반으로 삼았다. 순수했고 예술 외의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예술가(문신)의 태도, 정신에 영향을 받았다. 그를 보면서 배웠다. 문신과 같이 일하는 것이 영광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만나고 싶어했다. 간절히 열망하니 만나지더라. 후회는 없다."

최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한 짧은 소회를 말했다.

▲ 최성숙 작 '사랑'. 문신이 최 작가에게 선물한 거울이 그림에 나와있다. /이미지 기자

▲ 최성숙 작 '추억의 괌'. 1995년 둘의 마지막 해외여행을 그렸다. /이미지 기자
미술관 1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최 작가의 '사랑'을 들여다보면 문신이 선물했다던 대나무 거울이 떠오른다. 그녀는 마산에 정착해 '문신의 정원', '추산동의 가을' 등을 그리며 짧은 일기를 썼다. 그러면서 문신이 오로지 작품에 몰입하며 미술관 건립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했다. 1994년 두 예술가는 문신미술관을 개관하고, 문신은 20대부터 염원하던 꿈을 이뤘다.

서로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두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나갔다.

"너를 만나고서 채화가 밝아진 것 같아"라고 농담을 했다는 문신.

이번 전시는 서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을 문신과 최성숙의 '만남'을 두 예술가의 작품마다 새기게 한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문의 055-225-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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