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걷지 말라 자꾸 걸어오는 말
세월호·용산참사 등 소설 배경
주인공들엔 현재 진행형인 삶
섬세한 글솜씨 공감 불러내

예사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금세 푹 빠져들었다. 필력이 상당하다. 요즘 소설 특유의 톡톡 튀는 감각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다듬어온 문장 솜씨다.

마산 출신 소설가 강동수(57)의 소설집 <언더 더 씨>(호밀밭, 2018년 9월)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솔직히 한 편 한 편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읽고 나면 '아이고,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갈까' 싶어 한숨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세월호, 용산참사 등 요즈음 일어난 온갖 슬픈 풍경들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야기 전개도 과하지 않고, 구성도 단편에 썩 어울린다. 그러면서 굳이 계몽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하지 않아 좋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밀려나와 변두리 추운 거리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다. 처지들이 꽤 비참해서 꼭 이렇게까지 설정을 해야 할까 싶을 정도다.

"아니, 다른 부모들은 집 사주고 사업자금 대주고 손자 학자금 하라고 예금통장까지 쥐여 준다는데 당신네 집은 왜 이 모양이야? 맏이라고 숟가락 하나 남겨준 것도 없으면서 화염병 들고 데모하다가 시아버지는 비명횡사하고, 시동생은 감방에 들어가고! 당신네가 무슨 독립투사 집안이라도 돼? 중뿔나게 남 안 하는 짓은 해가지고 형사는 또 얼마나 귀찮게 하냐구! 잘나신 남편은 직장에서 떨려 나와 빌빌거리는 판에 내가 시동생 수발에, 시아버지 제사까지 모셔야 하냐구! " (용산참사로 아버지를 잃고, 동생도 교도소로 보낸 대리운전 기사가 주인공인 '운수 좋은 날' 중에서)

"나는 어디까지 흘러온 것일까. 이 낯선 바다는 도대체 어디일까. (중략) 교복 블라우스는 바닷물에 삭아 걸레처럼 해졌고 스커트도 암초에 들러붙은 굴 껍질에 갈기갈기 찢긴 지 오래다. (중략) 불가사리에 파 먹혀 뭉텅 날아가 버린 종아리 짬엔 허옇게 뼈가 드러나 있다." (세월호에서 유출된 여학생의 시신이 주인공인 '언더 더 씨' 중에서)

신문기자를 오래한 이력만으로도 저자는 아마 소설 속 사건과 주제들을 두고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도 잘 참고 있다. 하여 소설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어떤 태도를 주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독자가 공감하기에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냈다.

"여자와 나는 아이의 손을 하나씩 나눠 쥐고 그대로 걸었다. 나는 여자의 옆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저 여자는 미혼모라고 했지. 아마 아이의 아비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을 것이다. (중략) 십 년이나 이십 년쯤 뒤 저 아이는 가짜 아빠와 함께 보낸 놀이공원에서의 하루를 어떻게 기억할까." (역할대행 업소에서 일하는 사내가 주인공인 '가족소풍' 중에서)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 네 사람 다 제대로 된 가족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긴 집안 꼴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미쳤다고 가출을 했을까. (중략) 성도 다르고 부모도 다 다르고 만난 것도 넉 달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 네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그린 '알록달록 빛나는' 중에서)

무엇보다 마지막 작가의 말이 단순해서 좋았다. 어쩌면 그는 말하기보다 홀로 길을 걷는 것을 더 즐기는 작가인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새벽 세 시, 텅 빈 거리를 혼자 걷는 취객의 어깨에 내려앉은 희미한 어둠 같은 게 아닐까. 그렇게 정처 없고, 속절없으며 쓸쓸한 일이 아닐까." ('작가의 말' 중에서)

303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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