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 의무 부과 전 사업승인'이유로 대응 거부
전문가 "건축 자재 심의기준 조속히 마련해야"

라돈 검출 아파트 문제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방사능 물질 라돈이 기준치를 초과해 측정된 화강암 자재를 교체한 일부 아파트도 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창원시 의창구 아파트 시공사는 라돈 의무 측정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주민들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창원을 비롯해 서울과 인천, 부산, 전주 등에서 실내공기 질 측정 후 라돈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아파트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시공사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사례는 부산과 전주뿐이다. 부산지역에서는 시공사가 임대아파트 5000가구 중 3500여 가구에 설치한 화강암 자재를 교체키로 했다. 전주지역에서도 시공사가 아파트 702가구 중 문제가 된 화강암 자재를 쓴 145가구를 교체했다.

그러나 라돈이 검출된 다른 지역 아파트 시공사는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견해도 내놓지 않거나 사업승인이 올해 1월 1일 이전에 났다며 자재 교체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라돈이 측정된 창원시 의창구 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창원시는 민원이 발생하자 시공사에 문제 해결을 권했지만 '대응하지 않겠다'는 답변만 받았다. 시공사 측은 창원시에 한두 가구도 아닐뿐더러 라돈 측정 의무가 부과되기 전에 사업승인이 났기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또 전주, 부산과 달리 창원지역은 입주민이 공론화보다 시공사와 원만한 합의를 바라고 있어 자치단체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어렵다.

이 아파트단지에 사는 34가구는 환경위생기업 세스코를 통해 실내공기 질을 측정한 결과를 가지고 시공사와 면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파트 관계자는 "세스코에서 측정한 실내공기 질 결과를 보고 시공사와 면담을 계획 중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입주민들은 조용하게 해결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세스코 역시 정부에서 인증한 실내공기 질 측정 전문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공사가 면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이 같은 라돈아파트 문제를 해결하고자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방사선 등 유해물질 규제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최근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건축자재의 방사선 안전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아파트 건축에 들어간 자재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현행법 상 건축자재에 대한 별도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많은 화강암 소재 마감재가 시중에 유통됐다. 또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하도급 업체가 단가를 깎고자 성분이 검증되지 않은 싼 자재를 사용하기도 해 피해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라돈의 위험성이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문제 제기됐으나 우리나라는 단순 권고기준에 지나지 않아 문제를 키워왔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능이라 시민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건축자재에 대한 규제가 없는 나라도 없다"며 "유통된 건축자재에 대한 조사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 현 상황은 라돈에 대한 늑장대처가 문제를 키운 셈"이라고 말했다.

또 "신축 아파트에서 이 같은 문제가 계속 확산할 것이다. 이제는 건축자재를 심의하고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전주와 부산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지역구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영향이다"며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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