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계획한 도시 100년 뒤 주민 손으로 재생 중
방사형 도시계획의 중심 중원로터리…목조건물 일부·진해우체국 등만 남아
"우째된 기 우린 옛날 건물 죄다 없애?"…늦은 반성…진해역·중앙시장 도시재생

1910년대 일제의 진해 중원로터리 일대 도시계획과 2018년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

둘이 만나는 건 묘하면서도 흥미롭다.

100년 전 일제의 도시계획은 일본인들만의 거주지를 만들 목적이었다. 지금 진행되는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은 상권 활성화 사업이다. 옛 진해역 같은 공공시설과 역사문화유적 보존·복원의 의미와 함께 충무동 중앙시장과 부엉이마을 재생사업이다.

일본인들의 전용 주거지 조성과 상권과 서민 주거지 재생…. 100년 간격이 종이 한 장처럼 얇다. 슬라이드가 돌아가듯 한순간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섞인다.

◇'나가야'의 내부

일제 도시계획의 중심은 지금 창원시 진해구 중앙동의 중원로터리다. 일제 때 건물이 그대로 남은 진해우체국이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북원로터리와 진해역, 탑산(제황산)공원과 속천 등 모두 8개의 길이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8개 구역도 골목골목 연결된 미로형이 아니라 블록화돼 있다. 방사형의 전통적 계획도시구조다.

▲ 나가야거리 맨 끝 집은 창문과 처마 지붕 등의 외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일균 기자

진해우체국 인근, 일제 때 가옥 '나가야(長屋) 거리'에서 인심 좋은 어르신을 만났다. 덜덜 떨면서 거리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아예 "집으로 들어오시라" 한다. "나가야 안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여러 번 이곳을 취재했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산 지 30년이 넘었다"는 김달선(82) 어르신은 복도와 거실, 방 안 순서로 내부를 보여줬다. 이전 목조에서 콘크리트로 대부분 개조한 점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눈치챘을까?

어르신이 "같이 가보까요?" 하시더니 나가야에 남은 일곱 집의 일본식 가옥 중 건축 당시 모습 그대로인 곳으로 안내했다. 로터리 쪽에서 맨 끝 집은 창문과 처마 지붕 등의 외형이 그대로라고 했다. 또 한 집은 내부의 2층 계단이 목조 그대로였다.

▲ 나가야거리 한 집 내부에는 목조 계단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일균 기자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리 와 보이소" 하시더니 이번에는 아예 나가야거리를 벗어나 일제 당시 흔적을 찾으러 나섰다. 골목의 흔적은 탑산 쪽 남산초교 입구에 남아있다. 블록화된 도시구조라 좁은 미로식 골목과는 달랐다.

다음은 일제 당시 병원장 사택인 지금의 '선학곰탕'이었다.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 건축 당시 구조를 하고 있다. 늦가을 정취가 건물 연륜만큼이나 깊었다.

"우째된 기 우리는 옛날 건물들을 죄다 없애요. 탑산 진해탑도 없앴고, 근처 절도 유해안치소도 없앴고. 남은 건 진해우체국이나 나가야, 육각정(현 수양식당) 정도지예. 일제 잔재라 이기지. 개발 틈바구니에 없어지기도 했고."

"정부도 그래요. 정권 바뀌면 전부 바꿔. 적폐청산 카면서. 살아보이 그기 다 좋은 기 아이더라꼬. 남길 껀 남기고 기억할 건 기억해야지."

어르신께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다. 더불어 진해와 함께 한 그의 인생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식사는 집에서 해야지예!"

아까 보니 혼자 사시는 듯했는데…

"더 여쭐 게 있을 수 있으니 폰 번호라도?"

"폰은 있는데 잘 안 씁니더."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진해에 대해, 중원로터리에 대해, 나가야에 대해 '양껏' 정보를 주시던 분께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 2006년 9월 4일 자

◇부엉이마을

진해 중앙동에서는 결국 골목을 찾지 못했다.

방사형 블록구조인 데다 그나마 골목 비슷한 곳도 개발로 사라졌다.

비로소 골목을 찾은 곳은 인근 충무동의 부엉이마을이다. 부엉이마을 이야기를 들은 건 중앙동 식당이었다.

동네에 대해, 골목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아줌마는 "어디서 왔냐"고 했고 "기자"라 했더니 말씀이 많아졌다.

"창원시로 통합되고 나서 진해사람들은 득 본 게 없어예. 집값 올랐지 물가 올랐지. 그런데 독거노인지원이니 뭐이니 서민지원사업은 오히려 더 없어졌어예."

"통합 때 국회의원 ○○○이는 지금 진해에 못 와예. 오먼 맞아 죽는데!"

서민이란 말이 나오고 이런저런 대화 끝에 부엉이마을 이야기가 나왔다. 도시재생사업을 준비하는 곳이다.

충무동 중앙시장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부엉이마을을, 그야말로 타고 올랐다. 좁은 오르막길 골목으로. 이곳은 바로 앞 중앙시장과 함께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의 한 축이다.

▲ 중앙시장과 함께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의 한 축인 부엉이마을 오르는 골목. /이일균 기자

빈집을 게스트하우나 카페 등으로 활용하게 된다. 낙후된 주거지를 새로운 형태의 체류형 관광자원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전체 99㎡ 규모에 2023년까지 15억 원 정도를 투입한다.

이 일대가 괜히 정부 도시재생사업 지구로 선정된 것이 아니다. 4년 전부터 자생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작년 한 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부엉이마을협동조합 김도암 대표가 그 과정을 설명했다.

"주민들이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3년간 계속 교육을 받아왔지예. 교수님들도 오고."

"그 다음에는 협동조합도 만들고, 부엉이공원도 만들고, 벽화도 그리고, 큰 행사 있을 때 선전도 하고 그랬지예."

그렇게 올해 정부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된 충무지구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유형 5가지 중 '중심시가지형 상권활성화사업'에 해당한다.

여좌동 옛 진해역과 여좌천, 중앙동 진해우체국 등 유적들, 그리고 이곳 충무동 중앙시장과 부엉이마을 일대가 주요 사업 대상지가 된다.

중앙시장 뒤쪽 제황산 기슭의 부엉이마을.

이곳이 '주거지 지원형'이나 '우리동네 살리기형' 도시재생사업에 해당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 재생사업 지구에 포함되면서 옛 집이, 골목이, 동네 전체가 그대로 남게 됐다. 그 점에 대해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김도암 대표의 말이다.

"집 고치고 동네 정비해주겠다는데 주민들 다 좋아하지예. 만약에 재개발돼서 아파트 들어서보이소. 분양받아서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주민들 얼마 없슴미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