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만든 축구판 공포의 외인구단
구단, 선수 뒷받침 든든
한 번씩 좌절겪은 선수들 김종부 감독 지도로 원팀
시·도민구단 첫 리그 2위

지난 3일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어워드 2018은 경남FC 축제장이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경남 주포 말컹이 MVP와 득점상, 베스트11 공격수 부문 3관왕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네게바와 최영준이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에서 수상했다. 권오갑 총재는 시상식에 앞선 인사말에서 경남과 김종부 감독을 극찬하기도 했다.

승격팀으로서 첫해 이룬 성과도 대단했지만 시·도민구단 중에서는 리그 2위라는 최고의 성적을 달성한 것도 놀라웠다. 이런 경남의 돌풍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지난 1년간 경남FC를 취재한 결과로는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프런트가 안정됐고, 리그 톱 클래스 선수가 없는데도 적절한 활용을 통한 재활공장이었다는 점, 선수부터 구단 프런트까지 누구 하나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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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트 안정 = 2016년 조기호 대표가 경남FC에 부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프런트 안정이었다. 이미 전임 대표의 비위로 다들 검·경 조사를 한 번 이상씩 받은 구단 직원들은 굉장히 위축돼 있었다. 게다가 전임 대표들의 전횡으로 어처구니없게 구단을 떠나는 동료들을 지켜본 프런트로서는 신분상 불안함까지 느끼며 눈치만 보고 있던 상황.

조 대표는 "내가 있는 동안 직원 자르는 일은 없다"며 신분 불안을 잠재웠고, 부정·비리는 엄단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함으로써 직원들도 눈치를 안 보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프런트가 안정되니 선수단과 소통도 좋아졌다. 선수들이 구단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피자 몇 판씩 사 와서 직원들과 함께하는 게 일상이 됐다. 최근에는 유지훈이 결혼 청첩장을 돌리기 전에 사무국에 찾아와서 피자를 돌렸는데, 너무 많이 사 와서 처치 곤란일 정도였다.

선수단은 구단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선수들은 자신의 월 급여에서 5000원씩 떼어 복지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프런트 직원들도 각자 의사에 따라 5000∼2만 원까지 사정대로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게 지원받은 복지재단은 경남 시즌권을 대량 구매해 구단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편하게 프런트와 선수단이 소통하면서 행여 생길 수도 있는 불통으로 인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 '원팀 경남'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

특히 김경수 지사가 구단주가 되고 나서, 시·도민구단의 오랜 병폐였던 대표이사 등 물갈이에 나서지 않고 재신임해주면서 올 시즌 꺾일 수도 있었던 경남 돌풍이 계속되게 한 것도 프런트 안정에 큰 힘이 됐다.

◇재활공장 = 지난해 승격 주역뿐만 아니라, 올해 K리그1 준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진출을 이끈 선수들 면면을 훑어보면 리그가 시작될 당시만 해도 리그 최고 수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말컹은 농구선수를 하다가 축구를 시작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선수였다. 네게바는 브라질에서 한때 촉망받는 유스였지만, 방황하면서 추락하던 중이었다. 쿠니모토는 일왕배 최연소 득점 기록을 가진 기대주였지만 사생활 문제로 2번이나 구단에서 방출된 아픔을 갖고 있었다. 배기종은 경남에서 은퇴할 생각으로 왔지만 김 감독을 만나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영준은 경찰청 복무를 제외하곤 경남 원클럽맨으로 7년을 보냈지만, 번외 지명으로 경남에 입단했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해 K리그2 시상식에서 베스트11 중 10자리를 경남이 차지했을 때 오직 최영준만이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것은 깊은 한으로 자리할 만했다.

이뿐 아니다. 브라질에서 최고 수준이라던 파울링요는 부상 여파로 재기하지 못하고 2부리그를 전전하고 있었지만 지난여름 경남에 와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수원FC에서 미드필더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이광진도 지난여름 경남으로 이적해 왼쪽 수비수를 맡으면서 새로운 재능을 뽐냈다.

이를 두고 축구계에서는 경남을 '재활공장'에, 김 감독을 '재활공장 공장장'에 빗대곤 한다. 김 감독은 누구보다 힘겨운 선수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자신이 아픔을 겪었기에 선수들의 아픔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을 터. 선수들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고, 부진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동기부여를 하면서 '경남 원팀'으로 일으켜 세웠다. '김종부 매직'의 핵심이기도 하다.

◇절실함 = 김 감독은 시즌 내내 '절실함'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한계를 뛰어넘어야 새 지평이 열리는데 절실함이 없다면 한계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비보도를 전제로 선수 하나하나를 평가할 때도 가장 중심에 두는 것이 절실함이었다. '(누구는) 체중을 줄여야 하는데 피지컬코치가 집중해서 지도하지만 휴가만 갔다 하면 다시 살이 쪄서 온다. 월급을 주는 도민을 생각한다면 저래서는 안 되는데도 자신의 실력으로 월급값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라는 식이다. 이렇게 지목된 선수들은 대체로 올 시즌 경남 출전 선수 명단에서 이름을 찾기 어려웠다.

'이대로 여기에서 축구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는 절실함으로 일을 낸 선수로는 김효기나 박지수, 쿠니모토 등이 있다. 김효기는 전북현대에서 뛸 정도로 촉망받았지만 K3리그까지 내몰리면서 축구를 접을까 고민까지 했다. 그러다 경남에 와서 김 감독의 지도를 받고 축구선수로 재탄생했다. 박지수도 U-17, U-18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촉망받았지만 유스 출신으로 입단한 구단에서 1년 만에 방출되고 역시 K3구단까지 내몰렸지만 경남에서 갱생에 성공했다. 쿠니모토는 경남에 와서도 한동안 '자유로운 영혼'에 충실하며 몇 번이나 축구를 접어야 할 위기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포용력으로 쿠니모토를 감싸며 내재된 잠재력을 끌어내고 축구 인생에 목표를 위한 열정을 북돋우면서 지금의 쿠니모토로 부활시켰다.

김 감독의 지론은 이렇다. 프로선수는 이미 만들어져 와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프로 감독이 기술을 가르치고 해서는 답이 없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게 동기를 부여하고, 한계에 부닥친 선수에게 그걸 뛰어넘을 계기를 제공하면 된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은 '절실함'이다.

김 감독은 지난 수원삼성과 37라운드를 앞두고는 그 '절실함'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강조해왔는데 이제와 다시 그런 얘기해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기본에 충실할 것만 주문했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선수들은 절실함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고 시즌 내내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수원을 꺾었으며, 전북전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결국 '김종부 매직'의 핵심 키워드는 '절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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