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초원에 벗어던진 옷 조각, 꽃으로 피어나
땅나라 꽃 관리하던 천사 목동 향한 간절한 사랑에 하느님 명령도 어기게 돼
목동 떠나자 뒤늦게 후회 천사 자격 없다며 옷 벗어

하늘나라의 하느님이 천사 대여섯 명을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하느님의 정원으로 불렀어요. 하느님이 아주 주요한 일을 처리할 적에만 그곳으로 천사들을 불러모으는 곳이에요.

천사들이 하느님 주변으로 둥글게 둘러앉았어요.

"너희들을 불러모은 것은 저 아래 땅나라에서 꽃을 관리하는 일을 성실하게 할 천사를 뽑고 싶어서다."

하느님의 말을 들은 천사들은 모두가 자기가 그 일을 은근히 맡고 싶어 했어요. 그때 큰언니 천사가 나서며 자기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하자, 하느님은 작은 웃음을 짓고 말했어요.

"너는 성격이 급하고, 표정이 밝지 않아서 어렵구나."

그러자, 모인 천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모아 말했어요.

"그런 일이라면 시클라멘이 적격이어요."

"맞아요. 노래 잘하지요, 성격 쾌활하지요, 얼굴에 웃음 가득하지요."

그때, 큰언니 천사가 웃음을 잔뜩 머금고 천사들을 둘러보며 장난기 어린 말을 했어요.

"노래라면 나도 잘하는데, 에구."

그 소리가 나오자 모두들 웃음이 '뻥!' 터졌어요.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시클라멘 천사는 즉시 땅나라로 내려왔어요.

시클라멘 천사는 그날부터 아주 바빴어요. 그 넓은 초원에 피어 있는 꽃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귓속말로 말했어요.

"클로버야, 아직은 꽃을 피우면 안 된다. 추위가 물러가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피워라."

"목련아, 너는 곧 피워도 좋아."

"민들레야, 너는 내가 말할 때까지 꼭꼭 숨어 있거라."

시클라멘이 그렇게 초원을 다니다 우연히 양떼를 거느리고 다니는 목동을 만났어요. 시클라멘은 첫눈에 그 목동에게 반했어요. 목동의 얼굴이 우윳빛으로 하얗게 곱고, 눈, 코, 입이 예쁘게 조각을 한 것처럼 깔끔하게 보였어요. 시클라멘의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하늘나라 천사들과 도란거리며 놀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어요.

시클라멘은 수줍은 장밋빛 얼굴을 하고 목동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시클라멘 특유의 미소로 말을 걸었어요.

"나는 이 초원의 꽃들을 돌보고 있어. 우리 친구할까?"

목동은 느닷없는 시클라멘의 사랑 요청을 받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둘은 그날부터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둘이서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거닐기도 하고 초원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했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장미꽃처럼 발갛게 피어갔어요.

그러나, 목동은 마음 한 구석 시클라멘을 자기의 마음속에서 밀어내고 있었어요.

'여자가 수줍음도 있고, 남의 마음도 짚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 어느 날부터 목동이 보이지 않았어요.

시클라멘은 목동이 보고 싶어 초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그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어요.

"아! 목동이 어디로 갔을까? 혹시 내가 싫어 어디로 숨어 버린 것일까?"

시클라멘은 목동을 찾기 위해 초원뿐만 아니라 목동이 갈 만한 호수, 숲속을 찾아다녔어요. 우연히 숲속에서 양떼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 목동을 만났어요. 시클라멘은 너무도 반가워 어린애처럼 팔짝거리며 목동에게 달려갔어요.

"자기야,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아? 내가 미워?"

시클라멘은 목동에게 달려들 듯이 말했어요. 목동은 시클라멘의 다그치는 말을 듣고 무척 당황해하며 시클라멘이 이해할 수 있는 무슨 말로 변명을 할까 궁리를 했어요. 목동의 눈빛이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어요.

"응. 실은 이 넓은 초원에 꽃이 피지 않아 양떼를 데리고 꽃이 피는 이 숲속으로 왔지."

"뭐? 초원에 꽃이 피지 않아서 그래?"

시클라멘은 목동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에 빠졌어요. 꽃은 그 피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피게 할 수 없었어요. 더구나 하느님이 시클라멘에게 맡겨준 큰일을 어기고 함부로 꽃을 피게 할 수 없었어요.

시클라멘은 목동을 너무도 사랑했어요. 하늘나라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던 포근한 그런 사랑을 목동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날 밤, 시클라멘은 초원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풀꽃들에게 재촉했어요.

"얘들아, 풀꽃들아, 날씨가 따뜻해져 간다. 빨리 꽃을 피워라. 누가 누가 빨리 피나 보자." 다음날 아침부터 넓은 초원에 풀꽃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피어나 온 초원이 꽃 융단처럼 보였어요. 시클라멘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꽃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엄청 불안했지만, 연인 목동과의 사랑이 더욱 간절했어요.

다음날, 시클라멘은 밝은 햇살이 보석처럼 비추는 초원으로 나갔어요. 초원에 피어난 꽃들이 밝은 햇살을 받아 싱그럽게 웃고 있었어요. 초원 어디쯤엔가 목동이 나타날 것을 기다렸지만 목동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해가 지는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목동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시클라멘은 이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목동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 넓은 초원의 꽃들을 다 피우게 했는데, 그 목동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시클라멘은 다음날부터 초원, 숲속, 계곡 등을 다니며 목동을 찾았어요. 며칠을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목동을 찾을 수 없자, 시클라멘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아!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목동이 나를 버리고 갔을까?"

시클라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목동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시클라멘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호숫가 숲속을 거닐다가 깜짝 놀라는 일을 보게 되었어요.

"아니! 목동이 호숫가 숲에서 여신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다니?"

시클라멘은 목동에게 배신당한 자신을 알고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는 미친 듯이 그곳을 뛰쳐나와 많은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초원으로 달려갔어요.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계절에 맞지 않은 꽃을 피게 했으니 이 추한 나의 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클라멘은 들꽃이 융단처럼 깔려 있는 초원에서 울먹이며 하늘을 쳐다보며 애절하게 외쳤어요.

"나는 이제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으니 더 이상 이 초원에 있을 수 없다. 이 추한 나의 모습으로 천사라니?"

시클라멘은 그가 입고 있던 천사의 옷을 벗었어요. 그는 그 성스러운 천사의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겉옷을 벗었어요. 그리고 초원의 바람에 휘휘 흔들다가 하늘 위로 높게 던졌어요.

그와 동시에 신비로운 피아노 소리가 하늘에서 아주 은은하게 들려왔어요. 그 순간이었어요. 그 천사의 옷이 작은 꽃무늬처럼 조각조각 찢어지더니 초원에 나비처럼 살포시 내리자, 그 조각조각 하나하나가 꽃으로 피어났어요. 우리가 말하는 시클라멘 꽃이지요.

목동은 시클라멘을 왜 싫어했을까요?

시클라멘의 꽃말은, 빨간색은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 염려가 된다', 흰색은 '상냥한 마음씨의 임자'라고 해요. /시민기자 조현술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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