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입 때문에 아프고 서글펐던 무술년
허접한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 없어지길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많다. 어찌 된 판인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정치판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차고 넘친다. 그놈의 잘난 입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잘난 입을 덥석 받아 써주는 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세종대왕은 잘 모르겠는데, 독재를 했다는 측면에서는 좀 비판을 받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천재적인 분이어서 국민 입장에서는 행운"이라는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의 경우처럼 대놓고 벌리는 입이 있으니까, 그걸 또 쓰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이 뭔지 알고나 읽고 쓰는 것일까? 모든 종교의 요람인 이집트에서 소설은 태어났다. 신의 존재를 추측하기 시작하자마자 인간은 그들을 움직이고 말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변신 이야기와 신화와 우화와 소설이 생겨난다. 한마디로 허구가 인간 정신을 사로잡자 허구의 작품들이 생겨난 것이다.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놈의 잘난 입들 때문에 아팠고 서글펐고 흥미진진했던(?) 무술년 황금개의 해, 이쯤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지난 20년 동안 닭 40만 마리 튀겼지만, 지금이 가장 힘들다는 어느 자영업자의 입과 정치판에서는 자신이 '흙수저'라는 한국당 나경원 의원의 그 잘난 입은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즈음 문단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나름의 인지도 있는 두 소설가 공지영과 심상대의 입은 또 어떻게 다를까. 공지영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심 작가의 신작을 다룬 기사를 인용해 "내 평생 단 한 번의 성추행을 이 자에게 당했다"고 폭로했다. 공 작가는 여러 명이 함께 있는 술집에서 심 작가가 테이블 밑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강제로 추행했고 그 자리에서 항의하는 자신을 다른 문인들이 말렸다고 주장했었다. 이에 심상대는 나무옆의자 출판사를 통해 입장문을 밝혔다. "결코 여성을 성추행한 적이 없으니 성추행범이라는 낙인을 붙이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부인한 심 작가는 "공지영을 허위사실 유포 및 실명과 사진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예정이고 법률 검토가 끝나는 대로 실행할 것"이라고 했다.

심 작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공 작가도 곧바로 맞고소를 예고했다. 공 작가는 같은 날 관련 보도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뒤 "바람 잘 날 없다. 다 내 탓이지만 심상대 씨 명예훼손 법적 조치 주장하는 순간 무고와 성추행 고소 같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감옥까지 다녀오셔서 이쯤에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래서 성추행 건이 있으면 그때그때 고소해야겠다"고 한 공 작가는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니 기가 막히다. 낼모레 환갑 아닌가?"라고 했다.

낼모레가 환갑인데……, 언제까지 이따위 허접한 소설들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좁아터진 나라 어딘가에서는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가족은커녕 아무런 연고도 없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1280명이던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2010명으로 4년 만에 57%(730명)나 늘었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가운데 4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어느 곳에서든 인간은 기도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토대 아닌가. 썩어빠진 정치판이나 문단 등등의 돼먹지 않은 입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탄원을 올려야 할 존재를 그리기 위해 또 사랑하는 존재를 노래하기 위해 소설을 만들었다. 가면을 벗는 순간의 인간을 포착하는 것이 소설의 진정한 힘이란 걸 똥도 아까운 그놈의 잘난 입들에게 전하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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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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