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열매지기 공동체…농민의 시에 빼곡한 사람들
합천서 농사짓는 시인
청소년 인문학교 운영

서정홍 시인과 일면식은 있지만, 말을 나눠 본 적은 없다. 다만, 그가 시인이기 이전에 농사꾼이란 사실은 알고 있다. 그는 합천 황매산 기슭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쓴 것만 같다.

최근에 낸 시집 <감자가 맛있는 까닭>(창비교육, 2018년 9월)에 담긴 시들도 지식이 아닌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논둑을 걸을 때도/ 밭둑을 걸을 때도/ 살살/ 살살/ 걸어야 해요// 겨우내 추위에 떨다가/ 봄볕을 쬐려고/ 살포시 눈 뜨는 풀들이/ 놀라지 않게/ 아프지 않게/ 혼자 일어설 수 있게" ( '삼월에는' 전문)

"그 자리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제 할 일 다 하신다." ('나무' 전문)

그는 농작물과 함께 공동체도 일구고 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담쟁이 인문학교와 열매지기 공동체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공동체 청소년과 함께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시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학부모가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수업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첫눈 온다고 창밖만 바라보던 정근이, 꼴찌가 좋다며 툭하면 수업을 빼먹던 민철이, 부모 몰래 오토바이 타다가 넘어져 여섯 달 꼬박 병원 신세 지던 동준이, 부모 이혼하고 난 뒤에 학비조차 내지 못하던 순식이…. 그 못난 것들이 겨우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말이야, 틈틈이 못난 스승을 찾아와 위로하고 간다는 것을. 그 못난 것들이 하나같이 땀 흘려 일해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는 것을." ('못난 것들이' 중에서)

그리고 그의 시에 담긴 산골 마을의 소박하고 무심한 풍경도 좋다.

"주일인데도/ 신도는 오지 않고/ 농부 목사 식구들 모여/ 예배 준비를 합니다.// 농부 목사 식구들은/ 하느님 말씀은 전하지 않고/ 빈자리에 앉은 풀벌레에게 말을 겁니다./ 자리는 편안하신지요?" ('산골 예배당' 중에서)

"공중목욕탕 앞에/ 주인도 없는데 잘 팔려요.// 무인판매 호박 1000원 풋고추 1000원 상추 1000원 부추 1000원" ('무심한 하루' 중에서)

아무래도 올겨울 그가 산다는 산골 마을에 한 번 다녀와야 할까 보다. 그 마을 감자 맛이 정말 궁금하다.

112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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