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고기처럼 행동하는 정치권
정치 도의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여느 사람에게는 세밑이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아쉬워하는 때이겠지만 정치인들은 다른 일정표를 갖고 있는 듯하다. 내년 봄에 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떠올려준 것은, 창원시 성산구 예비후보 등록을 앞두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한 인사의 문자메시지였다.

출사표를 던진 이는 비단 그뿐이 아니며 여러 정당이 이 선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진보권의 단일화를 앞장서서 이끌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시기가 매우 빠름만 제외하면 이런 모습은 여느 선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보궐선거 지역이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만 아니라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정치에도 도의라는 게 있을 것이다. 고인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 다가올 선거에서 여당을 포함한 범진보 정치권은 정의당에 양보하거나 정의당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지나칠까. 웃을 수 없는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의당의 처지도 배려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는커녕 물 만난 고기처럼 기회를 잡은 듯 행동하는 일부 정당이나 정치인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물론 누구나 노 전 의원을 아깝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이해가 걸린 상황에까지 적용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고인을 추념하는 마음이 있는 정당이나 사람이라면 대승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권하고 싶다. 민주당이 여당의 위엄을 보여준다면 좋을 것이다. 고인의 마지막 길에서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경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자신과 고인의 그릇 차이가 어느 만큼인지는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보궐선거가 고인의 서거에서 머지않을 때 치러졌다면 여당과 진보정당들이 혹시 양보했을지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생전에 다른 정당들이 고인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노 전 의원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했다. 여러 차례 당적을 갈아탔다. 자신이 주도하여 만든 당을 '깨고' 나갔고 새 당을 지었다. 이 때문에 그와 한배를 탔던 사람들에게 고인은 미운털이 박히거나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면할 수 없었다. 고인과 한때 같은 당적이었던 나는 지금도 고인의 생전 정치적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다르다면 얼마든지 탈당도 할 수 있다. 고인의 경우 진보에서 '반쯤' 진보로 옮겨간 시간이 짧았고 그 과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그의 이후 정치 인생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정의당의 태생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지만, 그 이후까지 물고늘어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속한 정당이 고인이 지난 총선에서 출마했을 때 성토한 것도 내 눈에는 치졸하게 보였다. 그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성명서를 내면서도 고인의 정치 역정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을 빼놓지 않았다.

스스로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노 전 의원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가 떠올려진다. 그때도 노 전 대통령의 선택을 폄훼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진보 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 있었다. 매사를 당파나 이해관계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에게는 생애 마지막의 어려운 결단 앞에 놓였던 고인들의 심경은 전혀 헤아릴 만한 것이 못 된다. 내 편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선이 그어진다. 값싼 연민이나 공감은 쓸데없다. 이렇게 무정한 사람들이 하는 사회운동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지 의문이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에 몸담은 사람일수록 각 개인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미 없는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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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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