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자극하는 3차원의 예술로

서예를 하는 건축학자. 노년층을 위한 거주환경 조성, 노인 주거 프로젝트 등을 연구하다, 한시를 짓고 붓을 드는 작가. 권영민(49) 창원문성대(건축학과) 교수다.

그가 지난 10월 23일 창원문성대 융갤러리에서 '고당 권영민 서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고, 최근 3년간 쓴 작품 52점을 내걸었다. 서예의 감흥을 고스란히 담아 서예가 재미없고 고루하다는 선입견을 깨트렸다. 그는 선조의 훈화를 적는 대신 자신이 지은 한시를 쓰고 한지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했다. 지난달 2일까지 전시장에 다녀간 많은 이들이 서예의 또 다른 매력을 알았다고 말했다.

 

"서예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던 운명"

권 교수는 오랫동안 서예를 했다. 그는 산청에서 태어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상투를 튼 할아버지 밑에서 붓을 들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께서 한학자셨습니다. 또 할머니는 산청 남사마을에서 제남 하경락의 외동딸이셨고요. 제남 선생이라 하면 유림에서 제법 알려진 인물로 일찍이 그분의 문집을 접한 바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처남이 석정 하용문 선생님이세요."

▲ 권영민 교수.

아주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고 글을 쓴 권 교수는 서예의 전통적인 의미와 감상, 담박한 맛에 빠져 40년 넘게 한지를 펼치고 있다. 또 전공으로 공부한 건축도 균형이 중요한 서예와 연결되어 점, 선, 면이 어우러져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점, 선, 면이 모여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교수이자 서예가로서 미국 땅을 밟기도 했다.

"창원문성대가 창원전문대학일 때입니다. 대학은 미국 워싱턴주 피어스 컬리지(Pierce College)와 자매결연을 하고 교류를 활발히 했습니다. 피어스 컬리지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아주 잘되어 있었는데 우리 대학에 '동양문화의 소개'라는 강좌를 맡아달라고 했어요. 서예를 하는 제가 맡게 됐습니다. 현지에서 5주 동안 머물며 서예를 중심으로 강의했습니다."

서예는 언어의 장벽을 쉽게 허물었다. 이론보다 실습을 중심으로, 70대 간호사 출신 할머니도 피어스 컬리지 대학부총장도 먹을 갈고 붓을 잡았다. 마지막 날에는 수강생들이 자신의 호를 쓰고 낙관을 찍었다. 권 교수가 저마다 지어줬다.

그는 미국에서 서예를 어떻게 알렸을까? 우리의 서예는 중국의 서법과 일본의 서도와 다르다. 중국은 서체, 전통으로 지켜오는 기준을 중요시하고 일본은 자기 수양의 수단으로 본다. 반면 우리는 일상생활의 이상의 것, 기교와 예술로 본다. 세 나라 모두 서예를 하지만 가치관과 철학이 다르다.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회화보다 서예를 일찍 알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글을 썼을 것이라고. 그만큼 서예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예라는 존재가 어렵고 재미없는 것으로 되어버렸어요. 이를 어떻게 바꿔서 편한 예술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번 개인전을 열면서 이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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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민 교수의 작품 '고래사냥'. /이미지 기자


한시 짓고 그림 그리고, 서예 고정관념 탈피

권 교수는 서예는 서체의 질서와 리듬 속에서 감성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개인전의 주제작은 '나'였다. 작품은 감빛이 도는 한지에 '나'라는 한글 두 자가 적혀 있다.

"어느 날 면도를 하려고 거울을 보다 저를 보았습니다. 수십 년간 마주한 저인데, 저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실존적 저와 거울 속의 저는 다른 듯 같고 같지만 달랐습니다. 이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또 '고래사냥',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 등도 눈에 띈 작품들이다.

작가는 즐겨 불렀던 가요 '고래사냥'을 썼다. 그리고 '車차'를 형상화해 완행열차를 그려 넣었다. 가사에서 따온 이미지를 넣은 것이다.

사람 '人(인)'을 여러 가지 문자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도 메시지가 강하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으며 서로 배우며 깨닫자는 겸손이 담겼다.

또 문양이 돋보이는 한지에 큼지막하게 쓴 '兆조'는 아주 전통적인 서체로 가로(또는 세로)로 배열해야 한다는 서예의 고정관념을 깼다.

권 교수는 이번 전시를 끝내면서 다음 전시 주제를 정했다고 했다. 이는 그가 전시를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것.

"아마 다음 전시 주제는 '노자'가 될 겁니다. 그렇다고 매일 노자의 글을 찾아 그대로 써내려가는 게 아니에요. 매일 생각하며 사색하다 글을 써야겠다는 느낌이 올 때 한지를 펼칩니다. 그래서 다음 전시가 언제 열린다는 기약은 없습니다."

그는 붓을 제대로 다뤄야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글을 그대로 적거나 서체를 따라 쓰는 게 서예가 아니라는 말이다.

"서예는 붓을 다루지 못하면 쓰지 못합니다. 서체마다 리듬이 다른데, 이는 붓을 제대로 들어야만 표현할 수 있어요. 앞으로 서예가 2차원의 평면적 작품을 넘어 내용으로,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3차원의 예술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는 마음으로 날이 좋을 때 붓을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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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집 <시과십 고당잡기>.

자신의 삶 엮은 문집 펴내고… "아버지가 그리워"

권 교수는 이번 전시 때 작품만 공개한 것이 아니다. 문집 <시과십 고당잡기始過 鼓唐雜記>를 펴냈다. 개인전 주제작인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썼던 일기를 묶어 엮었다. 그는 돌이켜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봐야 했기에 잡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고당(鼓唐)은 그의 호다.

문집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풍이다. 증조부와 사돈이 회갑 축하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 지인과 서신을 주고받은 것들을 모아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잊혀 지지 않는 절기입니다. 한 달 사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 나이 45세. 저는 아버지 나이를 지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를 되돌아보고 지난날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비로소 40이 되어서'라는 뜻의 책을 펴냈습니다.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았고 글 중간에 관련한 작품을 넣었습니다."

권 교수는 문집을 펴내고 '나'라는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은 어떤 아버지였는지, 앞으로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지를 고민했다. 스스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그가 지은 한시 하나를 소개한다. <시과십 고당잡기(始過 鼓唐雜記)>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잔뜩 묻어있다.

 

忠父曲(충부곡) 아버지 그리움을 읊다

膝下童心樂(슬하동심락) 어릴 적에 아버지 슬하에서 동심을 즐겼고

賴覬我欲然(뇌기아욕연) 아버지께 이리저리 하고픈 대로 바라는 것도 있었네

舊詩唫嚴覺(구시금엄각) 아버지를 그리워한지도 꽤나 오래되었는데

始卌知君情(시십지군정) 비로소 사십 불혹이 되어서야 그분의 정을 알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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