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여자축구단

지난 11월 11일 오후 3시. 양산종합운동장에 다양한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한 눈으로 봐서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지만 다들 두툼한 스포츠백 하나씩을 메고 있기는 했다.

잠시 후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축구 복장이다. 나오는 대로 그라운드로 들어가 공을 가지고 노는데 경남FC나 창녕WFC 선수들이 훈련 전 몸을 푸는 모습과 다름없었다.

잠시 그러더니 정호정(43) 코치 지휘로 함께 운동장 주변 구보를 하며 호흡을 맞췄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돌더니 이내 정 코치가 깔아둔 포트를 기준으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앞으로 달려 나오며 고관절을 풀어주기도 하고 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근육을 풀어주는 등 초등학교부터 프로선수까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본격 훈련 전에 하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양산시축구협회가 여성축구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모습을 갖춰가는 '양산여성축구단' 훈련 모습이다.

다들 사연도 많고, 열정도 남다르다.

송홍섭(42) 감독은 대구FC에서 공격수로 활약했고, 상무에 입대할 정도로 축구 재능이 있었다. 부산 출신으로 최근 양산에 정착했는데 양산축구협회가 도움을 요청했고, 재능기부로 팀 감독을 수락했다.

정호정(42) 코치도 한때는 제법 날리던 여성 축구인이었다. 여기에다 등 번호 10번을 단 진보경(26) 씨는 대학까지 꾸준히 축구를 했지만 부상으로 이탈하고도 축구 사랑을 놓을 수 없어 언니와 함께 합류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디 OB팀인가 싶지만, 딱 여기까지다. 축구로 인생을 설계한 사람은 이 3명이 전부이고, 나머지 40여 명 '선수'는 참가한 이유에서 나이까지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20181118010044.jpeg
▲ 준비 운동 중인 양산여자축구단. /정성인 기자

신수진(32) 씨는 부산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운동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고 했지만, 몸놀림을 보고 있자니 운동신경은 타고난 듯했다.

팀 총무를 맡은 장민지(37) 씨는 남편의 뜬금없는 권유로 함께한 케이스다. 팀 내 최연장자인 서순자(57) 회장은 오래전 고교 남자 동기들의 권유로 여자축구를 7년 정도 하다가 그만뒀는데 갑자기 소환됐다.

신에스더(17) 양은 김해에 살고 있는데, 오로지 축구를 하려고 양산까지 매주 '출근'하고 있다. 달리기를 잘해 학교 대표를 할 정도로 운동 신경은 있는데 축구 말고는 관심이 없어 축구를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밖에도 부산은 물론, 울산이나 마산에서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준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한 사람도 있고, 미국인도 2명이 합류했다.

그런 팀이지만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9월 9일 창단하고 곧바로 김해에서 열린 경남생활체육대축전에 양산 대표로 출전해 준우승을 거뒀다. 거제시와 진주시를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서 김해시와 맞붙어 0-1로 패했지만, 창단 한 달도 안 된 팀으로서는 고무적인 성과였다.

연습경기를 할 상대를 찾지 못해 50대로 구성된 남자 조기축구회와 친선 경기도 해봤는데 2-3으로 졌다. 승패를 떠나 2골을 넣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신수정 씨는 "우리 팀에 전문적으로 배운 친구가 한 명 뿐이다. 다들 기본기가 안돼 있는데 그 차이가 크더라"며 "체력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기본기에서 확실히 달리지만 몇 번 더 경기를 해보면 해볼 만 하겠더라"라고 말했다. 양산축구협회는 내년부터는 여성축구리그에도 출전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경남 리그에서 우승하면 전국리그에도 출전할 수 있다.

송 감독은 "하려는 의지 열정이 대단하다"며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은 선수 출신 한 명뿐이다. 풋살을 했다는 몇 명이 있는데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기본기부터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창단식에 김일권 시장이 와서 축하해주기도 했고, 양산시축구협회도 여자축구단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다"며 "그밖에도 지역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정호정(42) 코치도 '뜬금없이' 소환당했다. 정 코치 말이다.

"송 감독하고는 동갑 친구입니다. 서울에서 지도자 생활하다가 고향 부산으로 와서 중학교 팀을 맡고 있는데, 송 감독이 함께하자고 하더라고요. 맡은 팀이 주말리그에 출전해야 해 매주 올 수는 없지만, 열정을 갖고 축구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에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정 코치는 인천현대제철을 마지막으로 선수로는 은퇴하고 일화에서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로 전환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남자 여자팀 지도를 하다가 부산으로 온 지 3년쯤 됐다. 남·여 축구를 다 경험하다 보니 그 차이를 잘 알고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노하우가 남다르니 지금의 양산여자축구단에 '맞춤형 지도자'인 듯하다.

이게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양산여자축구단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남자들의 조기축구회나 다른 여자 축구단은 '교육'보다는 '실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지도자가 기본기부터 실전 전술까지 가르치기보다는 곧바로 실전을 치르면서 알아서 배워야 하는 체제로는 큰 발전을 거두기 어렵다. 다양한 실전 경험과 지도 경험에서 녹아난 체계적인 훈련은 양산여자축구단이 무한 발전할 자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팀원들의 열정이 무척 희망적이다.

"남편이 축구를 좋아해요. 남편 후배 중에 신수진 선수 등 지금 양산여자축구단에 아는 사람이 몇 있었나 봐요. 선수가 모자란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남편이 나더러 한번 해보지 않을려냐고 묻더라고요. 뭐 못할 일도 없겠다 싶어 흔쾌히 동의했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네요."

이렇게 말하는 장 총무는 고등학교 때는 승마, 대학에서는 골프 선수로 뛸 만큼 전문체육을 맛본 사람이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도 하겠지만, 요즘은 팀 수문장으로서 두툼한 장갑을 끼고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사실 축구 포지션에서 골키퍼는 참 외롭다. 유니폼 색깔부터 다르니 훈련할 때 '같은 팀 맞나' 싶기도 하다. 훈련도 슈팅이나 패스가 아니라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공을 막아내는 훈련을 '따로' 해야 하니 팀에서 가장 '궂은'일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총무'까지 맡아 궂은일 해결사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20181118010045.jpeg
▲ 연습경기 중인 양산여자축구단. /정성인 기자

다시 훈련장. 11명씩 2팀으로 나눈 뒤, 페널티라인 부근에 각각 공 5개씩을 놔두고 연습경기를 한다. 나열된 공을 맞히면 득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너무 멀다. 양산 운동장은 FIFA 축구장 규격을 충족하는데, 아직은 선수들이 엔드라인부터 반대쪽 엔드라인까지 질주하며 공을 차기에는 체력이 달린다. 한참 지켜보던 송 감독과 정 코치가 나열된 공을 센터라인에 더 가까운 지역으로 옮기던 중 한 쪽에서 반대쪽 공을 맞혔다. 옮기던 중이었으니 노골이라는 선언이 있었지만, 슈팅을 날린 선수는 억울하다며 항의했다. 옮기는 것을 보고 거기에 맞히려고 찼는데 무효로 하는 게 어딨느냐는 것. 옆에서 보자니 억울할 수도 있겠고 무효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골 맛'을 빼앗긴 '선수'의 심정이 더 안타깝긴 했다.

 

송홍섭 감독

Q. 어떻게 참여했나요?

송홍섭 감독: 잠깐 쉬는데 연락이 와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재능기부로 참여하는데, 여성들이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열정을 보니 손을 놓을 수 없네요."

Q. 훈련은 어떻게 하나요?

송홍섭 감독: 기본기입니다. 축구를 전문으로 배운 사람이 한 명 뿐이에요. 멀리 보고 기본기부터 탄탄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동호회나 조기회와는 달리 엘리트 선수처럼 훈련도 하고 연습경기도 하면서 체계를 갖추려 해요. 축구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실전을 통해 익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드리블이나 트래핑 이런 게 안 되는데 공간 침투니 슈팅이니 이런 것 요구해봐야 별 성과 거두기 어렵기에 기본기에 집중하려 합니다.

 

정호정 코치

Q. 이력이 화려하더군요.

정호정 코치: 현대제철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이후 일화 코치로 4년 하다가 남자축구도 배웠습니다. 지도자 경력이 있다고 인근에 여자축구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송 감독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참여했습니다.

Q. 해보니 어떻나요?

정호정 코치: 얼떨결에 맡았지만 하다 보니 재미있습니다. 하고 싶어 하는 열정이 대단해요. 와서 보니 '저 정도 실력인데 왜 일찌감치 축구를 안 했지' 싶은 사람이 몇 있었습니다. 물어봤더니 초등학교 때 테스트를 받았는데, 너무 늦었으니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는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적성을 찾아 열정을 쏟는 게 얼마나 좋나 싶습니다.

Q. 훈련 모습을 보니 어린 친구 중 재능이 보이는 선수도 있는 듯한데요.

정호정 코치: 가장 어린 선수가 17살인데, 엘리트 선수로 가기에는 많이 늦었습니다. 중부권에는 생활체육 여자축구도 1부 2부리그가 갈립니다. 아직 남쪽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이쪽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신수진 선수

Q. 뛰는 모습을 보니 운동 감각을 타고난 듯하던데요.

신수진 선수: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고, 다른 운동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Q. 양산여자축구단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수진 선수: 집이 부산이고 직장도 부산입니다. 축구를 하고 싶은데, 여자 축구는 대부분 평일에 하다 보니 직장인은 참가하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서는 다행이 주말에 운동을 해서 저 같은 직장인이나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감독 코치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니 안 올 이유가 없죠.

Q. 소망이 있다면?

신수진 선수: 전문적인 교육을 못 받고 아마추어로 공 차면서 배웠는데,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산여자축구단에 16번 쟤 공 좀 잘 찬다'는 얘기 듣는 게 개인 목표입니다. 팀이 만들어져 한 달도 안 돼 경남 대회에서 준우승했는데, 전국 대회 우승하는 게 팀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입니다.

 

장민지 총무

Q.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이채롭더라?

장민지 총무: 남편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여러 운동을 경험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했습니다."

Q. 팀 살림을 맡고 있는데, 설명을 좀 해달라.

장민지 총무: 우리 팀에는 20대가 많아서 저는 나이가 많은 편입니다. 대학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는데 매주 20명 이상은 모입니다. 회비 내서 운영하며 지출을 최대로 줄이려 합니다. 안 걷고 안 쓰고.(웃음) 협회가 공이랑 유니폼도 해줬고, 감독 코치도 구해줬고, 운동장 사용료도 80%를 감면해줬습니다.

 

서순자 회장

Q. 최고령이십니다. 어떻게 축구를 하게 되셨나요?

서순자 회장: 제가 웅상 출신인데, 남자 동기들이 저더러 운동 신경이 좋으니 축구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걸 계기로 당시 함께 에어로빅하던 사람들을 모아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7년쯤 하다가 한두 명씩 빠져나가면서 팀 구성이 안 돼 아예 접었는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했습니다.

Q. 해보니 어떤가요?

서순자 회장: 젊은 친구들이 재밌어합니다. 딸 같은 나이대 선수도 있고, 그 열정이 보기 좋아 매력적입니다.

20181118010043.jpeg
▲ 양산여자축구단 구성원들. /정성인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