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마산 창동에 가면 70~80년대풍의 오래된 음악카페가 있습니다. '해거름'인데요. 40년 전통의 음악카페답게 전면 벽에는 LP 레코드판이 빼곡히 꽂혀 있습니다.

디스크자키(DJ)이자 주인장은 단골손님이 오면 이내 그가 평소 좋아하는 음반을 찾아 턴테이블에 올립니다. 처음 온 손님은 메모지를 통해 신청곡을 청할 수 있는데요. 두 번째 카페를 찾으면 주인장은 귀신처럼 그가 이전에 한 번이라도 신청했던 곡을 알아서 틀어줍니다. 그런 '해거름'의 DJ 고굉무 씨가 책을 냈습니다. '해거름 카페지기가 들려주는 음악야화'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명곡의 탄생>이란 책입니다.

월간 <피플파워> 독자님들은 아시겠지만 이 잡지에 3년 동안 연재했던 '고굉무의 음악이야기'를 보완해 묶은 책입니다. 어지간히 노래를 좋아하는 저도 전혀 몰랐던 수많은 명곡의 탄생 비화(飛火)를 알게 해준 인기 연재물이었죠. 물론 음악 이야기만 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각각의 노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사연과 그 곡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배경에 시대의 아픔과 그 시대를 살아온 민중의 삶이 담겨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인 작곡자 안성현의 또 다른 노래 <부용산>이 금지곡이 되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젊은 나이에 죽은 여동생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를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던 이유는 뭘까요?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이 알고 보니 독립투사 남편을 찾아 만주에 온 여인의 슬픔을 담은 노래라는 사실. 그래서 북한에서도 이 노래를 계몽기(일제강점기) 가요 중 대표곡으로 꼽고 있다는 것.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이 '국내 최초의 지방분권 가수'였던 이유, 그리고 <바위섬>의 가사가 고립된 5.18 광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라는 것.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로 선정된 <봄날은 간다>는 남녀 간의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곡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작사자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모와 그리움을 노래한 곡이라는 사실.

그리스의 민중가요로 알려진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원래는 연인들의 애틋한 이별과 기다림을 노래한 곡이었는데, 노랫말 속의 연인이 돌아오지 않는 민주주의로 감정이입이 된 배경.

존 바에즈가 부른 아름다운 선율의 <도나도나>가 알고 보니 유대인 대량학살의 슬픔을 노래한 곡이었다는 등이 그렇습니다.

이밖에도 마산 3.15의거 도중 참혹하게 숨진 김주열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 <남원 땅에 잠들었네>의 탄생과 금지곡이 된 사연. 시인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한센인 거주지였던 소록도에 세워지게 된 배경. 오빠 대신 처형당한 열아홉 처녀의 노래 <산동애가>에 얽힌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이밖에도 노래에 얽힌 뒷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정훈희의 명곡 <꽃밭에서>라는 노래가 있죠.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로 이어지는 노래죠. 그런데 이 노래 가사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 최한경의 한시에서 따왔다는 사실은 아셨나요?

조용필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사실은 경남 충무(현 통영) 출신의 가수 김해일이 불렀던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리메이크한 곡이라는 것도 아셨나요? 그리고 김해일이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로 죽은 불운의 가수였다는 사실도?

가수 이용의 희트곡 <잊혀진 계절>에서 '10월의 마지막밤'이라는 가사는 애초 '9월의 마지막 밤'이었다는 것. 9월이 어떻게 하여 10월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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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은 모두 서른여섯 개의 명곡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빼곡히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책으로 엮인 <명곡의 탄생>을 보면서 각각의 노래가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그 시기 민중의 애환, 그리고 노래에 얽힌 여러 사람의 삶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벌써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도입부입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 할 계절입니다. 한 권의 독서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편집책임 김주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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