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도 반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인류를 소멸하러 온 외계인 주인공 클라투
그의 마음을 돌린 건 바흐의 아름다운 선율
불면증 치료제로 작곡30개 변주곡으로 구성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접하고는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도 낮은 평점을 받았을까?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영화임에는 분명한 듯하니 아마도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이들이 많았던가 보다.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새로운 SF장르를 개척하며 놀라운 액션을 보여준 '키아누 리브스'와 명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어린 '데보라'로 인상적인 데뷔를 했던 미모의 여배우 '제니퍼 코넬리'가 함께 등장하니 거는 기대가 컸을 법도 하다. 이 영화에서의 '키아누 리브스'는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히어로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이니 가진 능력으로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영웅으로서의 그를 보기 위하여 영화관을 찾은 이들에게 주는 배반감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허술한 스토리 또한 이 영화의 평점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뒤로하고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주선에서 걸어 나오는 거대로봇. /스틸컷

◇ 외계인의 공격

무서운 속도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비행물체, 이것이 혜성이 아닌 이유는 점차 그 속도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뿐히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내려 앉은 비행체는 구슬 모양이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구슬과 너무나 닮아 있지만 그 크기가 어마하다. 이것이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는데 곧 그곳에서 엄청난 빛과 함께 우주생명체와 거대로봇 한 대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공격을 시도해 보지만 모든 게 허사다. 어찌된 영문인지 돌연 거대로봇의 공격은 멈췄으며 외계생물은 실험실로 옮겨지고 해부 끝에 그곳에서 나온 외계인은 인간의 모습과 닮은 '클라투'(키아누 리브스), 그는 세계 모든 곳의 의사결정권자들과의 면담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무시 당하고 정부기관은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이때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헬렌'(제니퍼 코넬리)은 그의 탈출을 돕게 되고 결국 클라투, 헬렌 그리고 헬렌의 의붓아들 제이콥은 기관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간 곳은 평소 헬렌이 존경하던 닥터 '바하트'의 집, 헬렌과 닥터 바하트는 이제 인류는 가망이 없으니 소멸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클라투를 설득하려 한다. 위기의 끝에서 진화하는 인류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인류를 제거하기 위한 거대로봇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메뚜기 떼, 거대로봇은 메뚜기처럼 생긴 수억 마리의 로봇으로 분해 인류와 그들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세상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떠한 반격도 무의미해 사라져가는 세상을 뜬 눈으로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 이제 정말 인류의 종말이 온 것일까?

◇골드베르크 변주곡

외계인'클라투'와 함께 숨어든 한적한 곳에 위치한 박사 '바하트'의 집,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감돌던 따뜻한 기운, 그리고 고요히 흐르던 아름다운 선율이 있으니 바로 작곡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다. 연주 시간이 50분 이상 걸리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창작과정에 재미있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평소 바흐가 궁정음악가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음악애호가로 유명했던 그는 '골드베르크'라는 클라비어 연주자를 고용했으며 그의 연주로 잠을 자보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백작은 바흐에게 수면을 위한 곡을 의뢰하게 되고 바흐는 그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헌사로 이 곡을 작곡하게 되니 일종의 자장가인 셈이다. 백작은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해 '나의 변주곡'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시했다고 하지만 불면증 치료에 효과를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일화를 가지고 있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첫 곡 '아리아'로 문을 연 뒤 2부로 나누어진 30개의 변주를 지나 다시 한번 같은 선율의 '아리아'로 그 문을 닫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바흐의 음악이 가진 형식의 묘미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듯하지만 30개의 변주는 각기 엄격한 틀 속에서 벗어남 없이 음악을 쌓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완벽한 구성과 치밀한 구조 속에 바흐가 이루어낸 완벽한 역작이 바로 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놀라운 형식미와 더불어 아름다운 선율 또한 우리의 귀를 사로 잡으니 역시 음악의 아버지다.

▲ 메뚜기 떼처럼 세상을 쓸어버리는 외계 로봇. /스틸컷

◇ 지구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인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첫 곡 아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거실 칠판에 어지럽게 쓰인 수학공식들을 바라보던 '클라투'는 거의 정답에 근접했지만 틀렸다고 말하곤 분필을 들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박사 '바하트'도 분필을 들고선 그와 어지러운 공식을 함께 완성해 나간다. 불완전하여 어지럽던 공식은 마침내 완성되고 박사는 이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아마도 박사는 이미 인류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그 해결을 위하여 많은 고민을 했던 듯하다. 그리고 인류에게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다. 조용히 돌아서는 '클라투', 이때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끝나고 제 1변주가 들려온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바라보며 '클라투'가 말한다. '아름답군요'. 오래전 살았던 한 인류가 전 인류를 구하는 순간이다. 그에게 이 곡이 왜 아름다운가? 지구를 구하러 왔다고 말하는 '클라투', 그는 우리 지구라고 말하는 인류에게 너희 지구?라며 반문하고 인류로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그의 논리에는 한줌의 오류도 없다. 당연히 지구를 위하여 사라져야 할 인류, 자본의 논리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소비되어가는 지구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있어야 할 질서가 사라져 버린 세상,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종족, 하지만 그의 귀에 닿은 음악은 자연의 질서가 분명하며 완벽한 균형 속에서 이루어 낸 선율이니 아름다울 수밖에.

인류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 선다. 시계도, 바쁘게 돌아 가던 공장도, 없으면 큰일 날 것 같던 핸드폰도. 지옥 같을 것 같지만 평화롭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세상이 제대로 한번 뒤집힌 후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던 비행사는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깨끗한 지구를 본적이 있어?' 가수 '한영애'는 잠자는 하늘님을 깨워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힌 바다거북이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쓰레기 섬, 그리고 사라져 가는 빙하를 보며 하나같이 지구가 아프다고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지구는 멈출 줄 모른다. 아니 속도조차 줄지 않는다. 지구가 먼저 멈춰 세우기 전 인류가 먼저 서야 한다. 벼랑 끝에 서기 전에 말이다. 이제 인류는 침략을 멈추고 지구와 평화공존 협약을 맺어야 할 때인 것이다.

"지구를 구하러 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요, 지구를 구하러 왔어요."

"그런데 왜?…………아………지구를 구하러 왔군요."

/심광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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