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극단 현장 〈강목발이〉 진해 극단 고도 〈웅천현 중평리〉
특색 있는 이야기 재구성
작품성 탁월·연기력 탄탄

도내 지역 극단들은 저마다 지역 특색 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해 작품을 만든다. 간단한 이야기라도 이렇게 연극이 되면 생기가 붙는다. 여기에 작품성, 연기력까지 더한다면 지역을 훌쩍 뛰어넘는 명작이 되는 것이다. 최근 잇따라 공연을 펼친 진주 극단 현장의 <강목발이>(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와 진해 극단 고도의 <웅천현 중평리>(유철 작, 차영우 연출)를 통해 지역 역사와 설화가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봤다.

▲ 진주에서 구전되는 강목발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민 극단 현장. 사진은 강목발이가 저승으로 보내지는 장면. /극단 현장

◇판타지로 살아난 의적 강목발이 = 진주에서 구전되는 설화 중에 조선시대 강목발이 혹은 갈봉이 이야기가 있다. 그는 목발을 짚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도둑질을 일삼던 사람이었다. 도둑질이라도 주로 부잣집만 털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기에 의적이라 불린다. 수법이 신출귀몰해서 도통 증거가 남지 않았다. 관아에서도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애가 탔다. 하지만, 한 관원이 꾀를 내어 그가 술법을 써서 물건을 훔치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강목발이는 목이 잘린다.

연극은 초반부터 인상적인데 바로 이 목이 잘리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극단 현장은 이 설화에 저승문을 지키는 참도깨비와 집을 지키는 업신 등 신화적 요소를 결합해 인간의 업에 관한 훌륭한 서사를 완성했다. 이 연극은 2016년 만들어져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단체상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과 최우수연기상(최동석 배우), 희곡상(임미경 작가)을 휩쓸었다.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달 22, 23일 이틀간 진행한 이번 공연에 관객 1000명이 몰렸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규모를 키워 대공연장에 무대를 세웠다. 명불허전이었다. 잘 짜인 극본에, 전체적인 무대 색감에서 극 중 배우들의 퍼포먼스까지 굉장했다. 특히 강목발이를 저승으로 보내는 부분을 백정이 소를 잡을 때 하던 장엄한 장례 의식으로 표현한 장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연극을 통해 강목발이 설화는 한국 토속 판타지로 재탄생한 듯하다.

▲ 연극 <웅천현 중평리>는 일제가 지금 진해를 만들 때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단 고도

◇어머니 아버지의 삶으로 그려낸 지역사 = 진해라는 근대 도시의 역사는 일제 침탈에서 시작됐다. 그 중심에 중평한들이 있다. 현재 창원시 진해구 중앙동 중원로터리 일대의 옛 이름이다. 원래는 웅천현 서면에 속한 넓고 기름진 벌판이었는데, 일제가 1912년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군사 도시를 만들었다. 마을을 수호하던 1200살 팽나무 당산나무가 있던 곳이 지금의 중원로터리다.

진해 극단 고도의 <웅천현 중평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담은 연극이다. 지난달 3일에서 18일까지는 <중평한들>이란 제목으로, 24~25일에는 <웅천현 중평리>로 해서 공연이 진행됐다. 모두 창원시 진해구 이동에 있는 소극장 판에서 공연됐다.

조촐한 무대지만 커다란 팽나무 당산나무를 표현할 만큼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들과 즉석에서 참여하게 된 관객의 조금은 어색한 연기가 어우러져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연극에 재미를 더했다.

즉석에서 섭외하긴 하지만, 관객의 개입이 제법 깊숙한데, 오히려 극에 신선함도 더하고 관객 자신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됐다.

차영우 연출의 말처럼 '맑고 오래된, 우리 아픔을 간직한 땅 중평한들'과 '전설 같은 우리 부모들의 삶'이 때로 구슬프게, 때로 익살스럽게 녹아들어 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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