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벼락만큼 왜군이 두려워한 '귀신폭탄'
지난달 전북 고창읍성서 11점 발굴
적진 도달해 터지도록 설계된 포탄
길쭉한 나무통 주변에 도화선 감아

현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천둥·벼락은 신이 내리는 벌이나 경고라고 생각했었고 아직도 천둥·벼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최근 영화의 개봉과 더불어 다시 유행을 탄 영국 록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에도 '천둥과 번개는 너무 무섭다(thunderbolt and lightning, very very frightening me!)'는 가사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벼락을 사람의 손으로 내려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격진천뢰는

날아서(飛 비) 공격(擊 격)하는 하늘을 뒤흔드는(震天 진천) 우레(雷 뢰). 이게 비격진천뢰이다. 지난 11월 15일 문화재청이 전북 고창군 고창읍성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이 양호한 상태로 발굴되었다고 발표해 다시 화제가 되었다(사진 1). 이 비격진천뢰를 놓고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걸로는 비격진천뢰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하기 조금 부족하다. 간단히 무기의 발달사를 되짚어 보자.

▲ 사진 1 - 고창읍성에서 발견된 비격진천뢰. 오른쪽 아래에 있는 동그란 물체들이 비격진천뢰이다. /문화재청

초기의 무기는 당연히 근접 전투용이었을 것이다. 맨주먹에서 시작해 몽둥이 같은 도구를 하나 들었을 것이고, 한 번에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 날카로운 날을 다듬어 칼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적을 죽이려면 상대방 무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공격하는 게 자연스러운 발상인지라 원거리 무기가 발달하게 된다. 그래서 나온 게 활이다. 활은 나무나 쇠뿔 등의 탄력을 이용해서 날카로운 촉을 가진 살을 날리는 무기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조금 더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더 무거운 물체를 멀리 날리는 게 필요했고 이 상황은 화약무기의 발명을 가져왔다. 대표적 화약무기인 대포는 주로 공성전에서 아주 큰 포탄을 날려 성벽이나 성을 부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수비측에서는 이런 공격을 피하기 위해 석성이 아니라 토성을 만들기도 했다. 석성은 대포알에 맞으면 깨져버리지만 토성은 대포알이 그냥 박히기만 했으니 말이다. 주된 용도가 이러다 보니 화약무기 발전의 방향은 상당기간 동안 얼마나 무거운 포탄을 멀리 날리는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비격진천뢰는 포가 아니라 포탄이다. 하지만 당시의 포탄과는 조금 다르게 날아가서 부딪힌 상대를 부수는 게 아니라, 날아가서 터지는 탄환이다. 터지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무기다. 그러려면 "터지지만 터지지 않아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오타가 아니다. 적 진영에 날아가서 잘 터져야,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걸 포에다 넣어서 쏜다는 것이다. 사격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총알 한 발을 발사할 때도 엄청난 소리와 압력, 열이 발생한다. 이런 극한의 발사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포에서 비격진천뢰가 터져버린다면? 우리가 죽는 문제이다. 그래서 발사할 때의 충격 등은 버티면서 날아간 다음에 적당히 잘 터져야 하는, 터지지만 터지지 않아야 하는 무기이다.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포탄의 강도를 가지고 있는 포탄 껍데기를 만든 후 내부에서 다시 폭발시키는 쪽에서 찾았다. 포탄 안에 화약과 점화장치를 설치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부에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면 비격진천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였을 것이다. 이 문제는 폭발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해결했다. 임란 전후의 화약무기를 잘 설명하고 있는 <화포식언해>를 보자.

"내부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목곡(木谷)이 있고,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이 있으며 내부에는 빙철(馮鐵)이 채워진다. 특히 목곡은 폭파시간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그 재료는 단목(檀木)을 사용하며, 그 골을 나사모양으로 파서 폭파를 빠르게 하고자 할 때에는 열 고비로, 더디게 하고자 할 때에는 열다섯 고비로 하되…."

◇어떻게 구성됐나

일단 목곡이 핵심이다. 나무(木)로 만든 홈(谷)이 파여 있는 장치이다. 화약이 터지도록 불을 붙이는 심지가 도화선이다. 포를 발사할 때는 그다지 긴 도화선이 필요하지 않다. 포병들이 대피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너무 길게 해봤자 상대방의 공격이 먼저 닥치면 낭패를 볼 따름이다. 하지만 비격진천뢰는 다르다. 날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서 충분히 긴 도화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포탄 안에 그냥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포탄 안은 화약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한 장치가 목곡이다. 길쭉한 나무통 주변에 홈을 파서 거기다 도화선을 감게 했다. 그래서 폭파를 빠르게 할 때는 열 번 감고, 더디게 할 때는 열다섯 번을 감으란 말이다. 그리고 이 도화선이 내부를 채운 화약이랑 닿으면 안 되니 만들어 씌운 보호 상자가 죽통(竹筒·대나무 통)이다. 이렇게 화약의 폭발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지연신관이 만들어졌다(사진 2).

▲ 사진 2 - <융원필비(戎垣必備)>에 남아 있는 비격진천뢰 도면. 아래 오른쪽부터 목곡, 죽통 등이 그려져 있다. 맨 왼쪽이 빙철이다.

비격진천뢰의 핵심은 또 하나 있다. 폭발의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내부에 빙철(철조각)을 넣었다. 그리고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비격진천뢰 표면에 무수한 공기구멍이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아마 비격진천뢰가 좀 더 쉽게 조각조각 갈라지라고 한 장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전투에서 효과는

자, 이제 이 비격진천뢰가 전투에서 어떤 결과를 이끌어냈는지 살펴보자. 임진왜란 발발 첫해인 1592년 9월 1일 자 조선왕조실록 기사이다.

"박진(朴晋)이 경주를 수복하였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성 안으로 발사하여 진 안에 떨어뜨렸다. 적이 그 제도를 몰랐으므로 다투어 구경하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만져보는 중에 조금 있다가 포(砲)가 그 속에서 터지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나갔다. 이에 맞아 넘어져 즉사한 자가 20여 명이었는데, 온 진중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신비스럽게 여기다가 이튿날 드디어 성을 버리고 서생포(西生浦)로 도망하였다"라고 전투 양상을 설명하고 있다.

20여 명이 죽는 게 무슨 큰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1차 진주성전투만 봐도 성을 지킨 관군은 3800명 정도에 불과했다. 비격진천뢰 40발이면 진주성 전투 당시 관군의 10%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피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투에서 진형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비격진천뢰를 알아보고 도망치면 그 부근의 진이 흩어진다는 말이다.

또 하나, 땅에 떨어진 다음 폭발하는 게 아니라 적으로 날아가고 있던 중 하늘에서 터진다면? 날아가는 관성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적들에게 쇳조각으로 가득한 강철비 벼락을 내리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래서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적들은 이 무기를 가장 두려워하였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당시 일본군은 비격진천뢰를 귀신폭탄이라고 부르며 무서워했다 하고, 일본인이 쓴 <정한위략(征韓偉略)>에는 "쇳조각이 별가루처럼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했다"고 했다.

◇임란 최고의 무기

다시 처음 말한 발굴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미 우리는 6점을 가지고 있고 사료를 통해 제작 원리도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이슈가 된 것일까? 그 여섯 점은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비격진천뢰는 전투에 사용하기 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 내부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2를 보면서 도면만으로도 뭔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다시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란 최고의 무기를 담은 타임캡슐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 사진 3 - 보물 860호 비격진천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지금까지 남아 있던 비격진천뢰 중 가장 상태가 좋은 유물이다. 하지만 세부 구조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문화재청

지금부터 426년 전 이 땅을 침략한 왜적들에게 호된 가르침을 내렸던 유물의 본 모습이 이번 조사를 계기로 우리한테 더욱 자세하게 다가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임란이 발발하기 1년 전 이장손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실록에 이름 석 자만 남아 있지만 이번 발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생각해 본다. /최형균(LH 총무고객처) talktalk@lh.or.kr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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