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변하면 사회 바뀐다 성차별 없애려면 교육부터"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성평등 선진국' 26년 남짓 거주…이미 페미니스트 선언하기도
"모든 개인은 평등…존중해야 한국 정치·경제 유리천장 견고 법·제도 변화가 돌파구 될 것"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은 스웨덴에서 26년 남짓 살았다. 한국에서도 가부장 문화가 강한 경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경험한 '성평등 선진국' 스웨덴은 어땠을까. 교육전문가로서 현재도 한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에게 성평등은 낯선 주제가 아니었다. 지난 26일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실에서 황 원장을 만나 '성평등한 경남'으로 가는 길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스웨덴 성평등 문화에 대한 문화적 충격 없었나?

"현재 일터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가부장문화에 젖어 있던 사람이 스웨덴 여자와 결혼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이 증거다. 스웨덴 여성은 세계에서도 가장 페미니스트들이다. 남녀평등이 등골에 박혀 있다. 가부장적 나라 가운데 한 곳에서 온 젊은이, 그것도 경상도 젊은이가 스웨덴 여성과 26년 이상 살면서 안 쫓겨난 비결은 내가 페미니스트가 됐기 때문."

▲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은 스웨덴 여성과 결혼해 스웨덴에서 26년 남짓 살았다. 이미 페미니스트 선언까지 한 그는 성 격차 지수를 높이고 평등문화를 만들려면 정치를 비롯해 행정·시민사회가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남도민일보 DB

-다시 한국에 와서 겪은 가부장문화가 새삼스러웠을 것 같은데.

"여기 와서 직원들에게 금기시킨 게 있다. 회식과 2차(노래방) 가는 건 업무 연장이 아니니 강요하지 못한다, 회식 자리에서 여성을 사이에 끼워 앉히지 마라, 여성이 물 따르고, 고기 굽는 거 금지다, 술 따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물 따르고 수저 놓는 사람은 거의 여성이다. 몸에 젖어 있다. 여성에게 무언의 압박이다."

-상사가 대부분 나이 많은 남성이다 보니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성이 남성 연장자한테 꼭 그럴 필요 없잖나? 성 문제가 들어갈 필요가 없다. 연장자 개념도 깨고 싶다. 그것도 일종의 차별이다. 나이를 따지다 보면 지역·대학 등 연고가 만들어지는데, 그런 걸 다 깨야 한다. 나이 많다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깨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것이 진실성·신뢰성·정당성이 있는지 판단해야지, 나이가 많다고 계급이 높다고 무조건 옳다는 식은 말이 안 된다."

-실제로 가사분담 했나?

"아내와 처음 만나 동거했다. 학생 아파트에 살면서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한 사람이 밥을 하면, 다른 사람은 설거지를 해야 하는 보편적인 규칙이 있다. 아내가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진짜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나이도 많고, 남자인데 꼭 반씩 나눠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오늘 정말 피곤한데 당신이 설거지하면 안 되느냐?'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가 쳐다보지도 않고 '나도 피곤해'라고 하더라. 군더더기 없이. 그때 아찔했다. 뭔가 대단한 곳에 발을 디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남녀평등의 아주 긴 터널을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곳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한다."

-평등문화가 체질이 된 것 같은데, 자녀 교육에서는 어떤가?

"아들 2명과 딸 1명을 두고 있다. 아이를 키울 때 여자아이라고 해서 다르게 대하는 걸 한 번도 못 느꼈다. 여자 아이라고 분홍색이나 레이스 달린 옷을 입힌다든지 머리를 빗겨준다든지 그런 거 하나도 없다. 자기가 입고 싶은 거 찾아 입는다. 애들 스스로 결정하는 게 많다. (아내로부터) 그런 걸 차별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성평등 하게 크고, 한 명의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한다."

-한국에서는 남자와 여자 아이 구분이 큰데.

"이건 꼭 바꿨으면 하는 건 우리 사회가 상당히 계급적이라는 거다. 한국에서는 큰형과 둘째형 사이, 오빠와 여동생 사이에도 위계가 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세 명을 키우면서 한 번도 위계를 느껴보지 못했다. 만약 둘이 갈등이 있으면 엄마·아빠를 찾아온다. 거기서 형이라고 우격다짐으로 이기는 건 없다. 근본적으로 모든 개인은 평등하다. 이런 인식이 강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자식 간도 굉장히 수직적인데, 스웨덴은 수평적 관계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선·후배와 교사·학생 관계에서도 개인으로서 존중해준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삶 속에 구현된다. 민주주의에는 개인과 개인의 평등도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아주 당연하다."

-성평등 문화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스웨덴에서는 근본 철학이 '모든 사람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이다. 이런 철학이 생기면서 '주부' 개념이 없어졌다. 집에 있다는 건 주부가 아니라 실업자라고 인식한다. 스웨덴 여성 취업률이 80%를 웃돌고, 남녀 임금 차이도 거의 없다. 한국은 여성 취업률이 50% 안팎이고, 임금도 남성의 60%에 불과하다. 승진 문제를 보더라도 한국은 위로 올라갈수록 남자로 꽉 차 있다. 스웨덴은 각료도 여성이 절반이고, 기업 내 유리천장이 없다. 사기업 임원을 비교하면 아이슬란드·노르웨이 등에 이어 스웨덴은 40% 정도 된다. 한국은 2% 정도인데, 1%가 남성 임원의 딸 아니면 부인이다. 한국이 성 격차 지수가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경남은 성 격차 지수가 더 낮은데, 해결방안이 있다면?

"법·제도로 바꿔야 한다. 스웨덴도 그렇게 접근했다. 모든 정책과 예산을 여성 관점에서 컨트롤한다. 예를 들어 남성 육아휴직 일수를 법으로 점차 늘리니까 공동육아·공동가사가 자리 잡는다. 특히 교육이 중요하다. 경남도교육청이 심도 있고 책임 있는 자세로 성평등 관련 교재도 만들고, 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가르치는 등 이런 움직임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바뀌면 사회도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스웨덴 정치를 '합의에 도달하는 정치'라고 하는데, 평등 문화를 만들려면 정치 분야를 비롯해 행정·시민사회가 머리를 싸매고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끝>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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