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천대하는 우리사회의 부끄러움
나라살림 책임지는 주인으로 대접해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출근길 노동조합 깃발이 찬바람에 떨고 있는 가운데 '철의 노동자'가 울려 퍼지고 있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조선업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오른다 하고 수주도 세계 1위를 되찾았다 하는데 노사 협상은 해를 넘길 모양이다. 지금은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조금 양보하라 되풀이할 것이고 노조는 지금껏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그나마 이 불황을 헤쳐 나왔는데 구조조정이다 임금삭감이다 들이대는 칼날을 거두라 종주먹질을 해댈 것이다. 칼바람에 임금 인상이나 구조조정 철회가 적힌 깃발이 떨고 있는 가운데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랫말이 더욱 시리게 가슴을 파고든다.

부모님 도장 받아오라는 성적표를 쭈뼛쭈뼛 내밀면 한참을 보시다 도장을 누르시며 말씀하셨다. "이놈아. 이래갖고 지겟작대기로 목발 장단이나 뚜드리겠다. 촌에서 평생 무지렁이로 썩을 양이더냐!" 아버지 말씀이 씨가 되었던지 농사를 짓겠노라 고향에 눌러앉았다. 그러자 집안에 난리가 났다. 농사짓는 놈에게 누가 시집올 거냐고 야단이었다. 매파가 사흘돌이 드나들고 어른들 등쌀에 맞선도 숱하게 보았다. 그러나 그녀들 눈에 비친 나는 땅마지기나 가진 촌것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포기자였던지라 수학 시간이면 졸거나 수학책 밑에 시집이나 소설책을 깔고 읽었다. 그러다 걸리면 선생님은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통을 때리며 말씀하셨다. "너희 같은 놈들이 사회 나가면 적응 못하고 기름밥 먹는 공돌이 공순이 되는 거야." 농사일을 접고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이 칼럼 청탁을 처음 받았을 때 일이다. 담당 기자가 이름 뒤에 시인이라 쓰겠다기에 사양했다. 변변하게 시집 한 권 내놓지 못한 터수에 무슨 시인이냐며 그냥 노동자라고 쓰기로 했다. 담당 기자가 새로운 집필자라고 소개하자 여러 반응이 나왔다. 주로 '이런 신문 또 없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노동자에게까지 귀한 지면을 내주는 경남도민일보 역시 대단한 신문이라는 식이었다. 눈을 씻고 봐도 그 노동한다는 집필자에 대한 관심과 언급은 없었다. 그 반응을 보면서 시인이라고 썼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입에는 걸고 다니지만 눈은 깔보고 있었다. 우리 자신조차 스스로 낮추고 멸시한다. 조선소 일을 배울 때 기계 설치를 담당하던 이의 보조공으로 따라다녔던 적이 있다. 하루는 기계 유압 장비가 터져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쓴 채 일하는 중에 회사 중역들이 현장으로 들어왔다. 뒷짐을 지고 구경하던 임원중 한 사람이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작업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를 했다. 엉금엉금 기계 밑에서 기어나간 그가 기름 바닥에 뒹굴던 스패너를 주워들고 임원의 손 위에 놓고는 말했다. "나보다 잘할 거면 당신이 직접 하소. 그리고 여기서 작업 지시할 거면 상무 전무 딱지 떼고 여기서 반장 하든가!" 시급 몇백 원이 한순간에 오른 것보다 속이 시원했다.

저들은 농자천하지대본이요 경제 건설의 역군이라 말은 번지르르하나 뒷짐에 눈은 내리깔고 있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일인데 밥 한 공기 300원도 중요하고 임금 몇 프로 오르고 복지가 향상되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나라 밥상을 책임진 주인으로 이 나라 곳간을 채우는 주인으로 대접은커녕 멸시받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공돌이 공순이 촌놈에게 휘감는 2018년의 겨울바람이 차다. 인간답게 살고 싶고 사람답게 대접받고 싶은데 아직도 시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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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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