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예산 편성·감사…그 모든 과정 핵심은 성 주류화"
성평등 중요성 공감대 형성
남녀 육아휴직·무상 보육…
여성 노동력 확보로 경제성장
의회 여성 비율 46% 달해
정치 참여율 세계 최고 수준

지난달 중순 방문한 스웨덴은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의원내각제인 스웨덴은 지난 9월 총선거를 치르고 나서 두 달 가까이 새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지 않아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지금도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나치주의에 뿌리를 둔 극우 성향 정당(스웨덴민주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지만,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그 정당과 연정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를 떠나 어떤 연립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스웨덴 정부의 성평등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1972년 세계 최초로 성평등위원회를 정부기구로 설치했고, 2005년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 2008년 차별금지법을 만든 스웨덴 사회에서 성평등은 이미 체화돼 있다. 여성 경제활동과 정치 참여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가운데 기업 임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조사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지난 2014년 출범한 현 정부는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부'를 선언했다. 아직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지 않아 현재는 페미니스트 정부를 유지하고 있다.

▲ 공동취재단과 인터뷰 중인 안나 카린 스웨덴 복지사회부 성평등국장. /공동취재단

수도 스톡홀름에 있는 복지사회부 청사에서 만난 안나 카린 성평등국장은 스웨덴 성평등 정책의 기본 철학을 세 가지로 꼽았다. '인권·정의·민주주의'다.

그는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력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 포괄적인 목표다. 한국에서 성평등 철학이 실행으로 옮겨지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성주류화다. 법과 감사·결정 등 국가기관이 다 함께 성주류화를 따르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밀접한 관계,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나 카린 성평등국장과 일문일답.

-페미니스트 정부란 어떤 의미인가?

"특정 부서가 아닌 모든 부서, 모든 장관이 페미니즘 가치와 철학을 실행하는 정부를 뜻한다."

-페미니즘 정부를 표방했을 때 반대여론은 없었나?

"스웨덴 사회에서 성평등은 이미 중요하고, 정부 역할은 컨트롤하거나 관리하는 것이다. 성평등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와 국민 모두의 발전에 중요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당이 성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성평등이 중요한 이데올로기라는 데 대한 공감대는 확실하다."

-핵심 정책이 있다면?

"1960~1970년대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력 수요가 증가했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보유 노동력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었다. 여성의 노동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육아휴직, 비용이 들지 않는 질 좋은 보육, 남녀에 따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 이 세 가지를 중점에 두고 정책을 폈다. 이런 개혁을 추진할 때 갈등과 반대도 있었지만, 경제발전에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었기에 진행할 수 있었다. 1963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7%, 1990년부터 현재까지는 85%에 달한다. OECD 조사 결과에서도 성평등 정책이 북유럽 경제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페미니스트 정부 이후 주요 성과를 꼽으라면.

"정부 모든 부서에서 매년 예산을 짤 때 성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발표한다. 60여 개 주요 부처가 성평등 정책을 평가하고, 이 중 몇몇 기관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성 불평등을 발견해 그것을 보완해서 다시 정책을 폈다. 페미니스트 정부 이전부터 시작됐는데, 이번 정부에서 더욱 확대된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특히 올해 1월에는 종합적인 성평등 정책을 지원하고 분석·연구하는 독립기관으로 '양성평등청'을 설치했다."

-내각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여성할당제 효과인가?

"이런 현상은 1960년 정당 내 토론과 운동으로 일어났고, 70년대 이후에는 절반 이상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공감이 확산되기 시작됐다. 현재 의회 여성 비율은 46%, 이전 정부에선 44%였다. 앞으로 더욱 증가해 남녀 비율이 50 대 50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올해부터 여성징병제를 부활시켰는데.

"여성징병제 논의는 2010년에 이미 나왔다. 특별히 새로운 이슈는 아니지만 그때는 자발적이었다면 지금은 의무다. 남녀 모두를 징집하는 이유는 적절한 자격을 가진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나이, 출신, 사회적 배경 등이 골고루 혼합된 상황이 성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화장실·샤워실도 남녀 공용으로 쓴다. 군대에서도 공동의 공간에 남녀 구분이 아닌 개인이 충분히 쉴 수 있는 편의도가 높은 공간 마련이 중점이다."

-한국의 성평등 개선 방안과 관련해 조언한다면.

"첫째, 여성과 남성을 따로 분석하는 통계가 중요하다. 성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떼어놓고 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의 생성과 사용, 분석이 필요하다. 둘째는, 여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남성 이야기를 같이 해야 한다. 책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여되기 때문에 대화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끝으로, 성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정치적인 것은 물론 시민사회의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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